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가요순위프로그램 자체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뮤직뱅크 나와서 1위한다고 뮤직뱅크 순위에도 들지 못한 인디밴드의 음악이 그보다 못한 것일까? 1위는 커녕 후보에도 들지 못한 다른 음악인이나 음악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물론 대중음악으로서 보다 많은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대중음악이란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음악과 음악인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은 의미가 있는가. 그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와 취향이 있을 텐데.
말 그대로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과연 뮤직뱅크 1위한 씨엔블루에 비해 뮤직뱅크 언저리도 가보지 못한 와이낫이 음악적으로 떨어지는가? 1위도 몇 번을 하는 소녀시대에 비해 인디씬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SPOT LIGHT나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이란 의미가 없는 것인가.
결국 걸그룹 가운데서도 소녀시대가 있는가 하면 애프터스쿨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더걸스가 있으면 2NE1도 있어야 한다. 작년의 걸그룹 전성기는 바로 그런 다양성에서 나왔다. 카라가 있었고, 포미닛이 있었고 티아라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취향의 걸그룹들을 마음대로 골라 선택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켰기에 걸그룹의 전성기였던 것이지 줄세우기로 걸그룹의 전성기였던 것은 아니었다.
카라에게는 카라만의 방향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녀시대도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컨셉이 일치할 수는 있어도 결국 카라만이 추구할 수 있는 어떤 방향성이란 카라밖에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소녀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소녀시대가 아무리 변신을 하려 해도 결국에 소녀시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프터스쿨은 바로 그 정체성을 바로 찾음으로써 대박난 케이스고, 포미닛과 2NE1 역시 자기만의 영역에서 그 입지를 굳히고 있다. 과연 그런 것들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 누가 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어쩌고, 그런다고 과연 지금의 모습을 버리고 다른 모습을 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애프터스쿨이 성공하고 있으니 카라가 애프터스쿨을 따라가고, 소녀시대가 성공하니 2NE1이 소녀시대의 컨셉을 따라하고, 포미닛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음악과 무대를 쫓아 보이고, 그것은 대중부터가 바라지 않는 바일 것이다. 설사 별 관심도 없고 해도 포미닛은 포미닛이어야지 포미닛이 카라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 누가 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성공해도 어찌되었든간에 자신이 이미 추구하는 바 - 대중과 약속한 바를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돌만이 아닌 기성 음악인들도 마찬가지다. 메탈을 하다가 갑자기 발라드 들고 나오면 사람들이 놀란다. 샤우팅 지르다가 갑자기 트로트 부르고 하면 놀라고 당황하기 전에 욕부터 나오게 되어 있다. 발라드 부르다가 랩댄스 유행한다고 그것 쫓아하면 그냥 우스꽝스러운 광대다. 물론 어느 정도 장르를 오가는 변화는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영역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단지 트랜드가 그러니까 부활이 갑자기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들고 나와 기존의 발라드 노선을 부정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잘나가고가 아니다. 결국에 잘 나가는 장르나 스타일이란 정해져 있다. 대중적인 유행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두가 그를 쫓아가야 하느냐.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그들의 장르와 스타일을 좋아하는 대중에 충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음울한 모던락이 유행한다고 블랙홀이 그것을 쫓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블랙홀의 음악은 블랙홀 안에 있고 그 안에서 완성도를 추구하는 수밖에 없다. 블랙홀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마 그것이 블랙홀의 가치일 것이다. 얼마나 자기 음악에 충실할 수 있는가.
하물며 카라는 아이돌이다. 카라의 컨셉은 그 가운데서도 90년대 원조아이돌의 느낌을 간직한 아이돌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희귀하다. 오죽하면 동생 입을 빌자면, "덕후 전용 아이돌"이라고까지 불리고 있겠는가. 그에 맞게 멤버도 구성되고, 코디도 하고, 무대도 만들고, 무엇보다 음악까지 그에 맞춰 뽑아져 나오고 있다. 90년대 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약간은 고풍스럽고, 또 때로 촌스럽기까지 한 음악이란. 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카라만의 매력이 나오는 것이다. 결코 잘 부르는 것이 아님에도 생목에서 뽑아져 나오는 카라의 달달함에 사람들이 매료되고 마는 것도.
카라의 팬덤이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의 컨셉변화에조차 불만을 품고 마는 그런 사람들이 카라의 팬덤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라의 팬덤 밖에서도 그동안의 카라가 보여준 이미지에 대해 루팡에서의 변신에 당혹스러워하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규리가 라디오에 나와 말한 그대로,
"카라만의 밝은 이미지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쪽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루팡과 함께 무대에 세웠던 엄브렐러에 대한 반응이 상당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카라답다. 이것이야 말로 카라답다. 즉 그러한 이미지야 말로 카라와 팬덤, 카라와 대중과의 약속이었던 셈이다. 원조아이돌스러운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라는 것이.
따라서 카라로서는 기존의 팬덤과 대중적인 인지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기존의 컨셉을 결코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아예 새로운 이미지로써 새로운 팬덤과 새로운 대중적 이미지를 노려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모험인 이상 어떻게 해서든 기존의 카라의 이미지 그 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팬덤과 대중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또다른 새로운 놀라움을 줄 수 있는 모습으로. 더구나 카라의 멤버들도 나이를 먹고 기존의 컨셉을 부담스러워할 때가 되었으니.
루팡은 바로 그러한 고민에 대한 답이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놀랐다. 티저를 보고는 먼저 감탄했고, 음원과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는 조금 실망했다가, 컴백무대를 보고서는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말았다. 아, 이런 컨셉이었구나. 아, 이런 것이었구나. 바로 이것이 카라가 팬들에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였구나. 이것이 카라였구나. 납득했다고나 할까?
그곳에는 카라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카라가 아니었다. 카라이지만 카라가 아니었다. 그들은 성장해 있었고 성숙해 있었다. 더 멋있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카라였다.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않고서도 기존의 카라 위에 새로운 컨셉을 멋지게 녹여낸 것이었다. 소녀가 자연스레 숙녀가 되듯 그녀들 역시 변신이 아닌 성장에 성공한 것이었다. 다름 아닌 바로 카라로서.
내가 카라의 이번 새앨범에 대해 만족스러워하는 이유다. 그리고 내가 이미 카라의 새앨범에 대해 이것으로 충분히 성공이라 나름 인정해 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전에도 말했지만 아이돌이란 음악을 파는 음악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는 존재다. 아이돌로서의 이미지가 아이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상품이다. 음악이란 그러한 아이돌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포장지다. 아이돌로서의 이미지를 꾸미고 돋보이는 장식이다. 카라의 이미지란 무엇인가? 팬덤과 대중이 요구하는 카라만의 매력이란 무엇이겠는가? 카라라는 것이다. 다름 아닌 카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위한 음악이란 어떤 음악이어야겠는가? 그를 위한 무대란?
놀라움은 있었지만 배반당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감탄이 나왔다. 기존의 카라의 이미지에 충실하면서도, 기존의 카라에 대한 팬덤과 대중의 요구에 충실하면서도, 그러나 카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 어느새 눈을 돌릴 정도로 새로운 매력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무대에 선 카라의 모습은 그렇게 친근하고 또 그렇게 새로웠다. 기존의 시장에 등돌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장으로의 안착에 성공한 것이다. 누구도 배반하지 않고, 누구도 등돌리지 않은, 그러나 어느새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카라라고 하는 카라만의 영역에서 이렇게까지 충실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굳이 순위프로에서 몇 위 하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워낙에 나 자신이 이번 앨범과 무대에 만족해 버리고 나니 그 다음은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더구나 나는 이번 루팡 앨범을 듣고 순위가 이렇게까지 빨리 올라갈 것이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조금 천천히 반응이 와서 느긋하게 오래 갈 노래다. 카라의 새로운 컨셉 역시 한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조금 반응이 느리더라도 오래 갈 수 있는 컨셉이다. 그런데 과연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 못하고, 몇 번 하고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미 이것으로 만족스러운데.
음악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못한다고 카라가 새삼 소녀시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티아라에 1위를 뺐긴다고 카라가 다시 티아라를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티아라의 "너때문에 미쳐"는 티아라니까 소화하는 것이지 카라가 그런 노래를 부르면 또 전혀 안 어울린다. 아니 그러자면 먼저 카라라는 자체를 어느 정도 - 최악의 경우 아예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에 카라는 카라일 수밖에 없고, 카라로서 카라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순위란 또 무슨 의미이겠는가. 1위한다고 카라이고, 1위 못한다고 카라가 아닌 것도 아닌데.
그러나 문제는 보아버렸다는 것이다. 작년 워너로 1위를 했을 때 구하라가 울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충격이었다. 내가 살면서 사람이 우는 모습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눈물을 그렁이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이 전혀 추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건 마력이다. 아마 19세기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그 마력 때문에라도 많은 고생을 겪지 않았을까. 그래서 정작 듣고 싶은 음악은 블로그에 있음에도 굳이 음원사이트 가서 스트리밍을 돌리고 있는 중인데 - 음반이야 당연히 샀다. -
결국에 모순의 연속이라는 건데, 워낙 순위프로그램 자체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아이돌이다 보니 1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머리로는 무슨 1위씩이나 필요한가 하면서도 손으로는 어느새 음원사이트 스트리밍을 누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위프로 1위에 별 의미따위 두지 않으면서도 단지 1위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런 당연한 욕심이랄까?
어쨌거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한 가지다. 이미 카라는 성공했다. 카라의 새앨범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음악적으로든 무대에 있어서든, 특히 아이돌로서의 이미지에 있어서든. 순위프로그램에서의 성적이란 단지 부수적으로 붙는 수식에 불과할 뿐. 카라가 카라인 이상 그 자체로 이미 카라의 승리라는 것이다. 카라WIN!
정말 만족스런 앨범이고 만족스런 무대였다. 그리고 만족스런 컨셉의 변화였고. DSP의 전략인가. 아니면 카라이기 때문에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인가. 개인적으로 카라가 스윗튠과 만난 것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카라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과 가장 어울리는 무대와. 나는 정말 만족해 버렸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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