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 기대면서 지키고 싶은, 엇갈리는 이유

까칠부 2018. 1. 9. 11:05

어쩌면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봤을 때 상당히 기분나쁠 수 있는 설정일지 모르겠다. 하필 사고로 이강두(이준호 분)와 하문수(원진아 분)가 각각 사고로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것부터가 작가의 치밀한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들은 아버지를 대신해야 하고 딸은 아버지를 그리게 된다.


이강두가 도망치려는 이유다. 진지해지니 무서워진다. 좋아하니까 두려워진다. 과연 자기가 상대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남들만큼 행복하게 진지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상대가 아무리 괜찮다 말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런 한심한 자신의 모습을 결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자신에게조차도. 차라리 그보다 알아서 먼저 도망치는 쪽이 덜 비참할지 모른다.


하문수가 이강두에게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가장 듣고 싶었던 칭찬이었다. 자기가 언니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그날 딸로써 믿고 기댈 부모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윤유선 분)는 동생 대신이었다. 그때 다하지 못한 언니로서의 책임을 다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인정받아야 했었다. 그때 듣지 못했던 칭찬을 이번에는 들어야만 했었다. 괜찮았다고. 잘했다고.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본질은 부모의 인정과 칭찬이 고팠던 그 시절 어린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른인 척 하는데 익숙해져야 했던.


처음 하문수가 서주원(이기우 분)에게 이끌렸던 이유였을지 모르겠다. 자기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을 보면서. 하지만 그런 한 편으로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언니로서의 책임감은 자기가 지켜야 할 대상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모순이 이강두라는 대상을 향해 모인다. 남자로서 이강두에게 기대며 한 편으로 상처투성이인 그를 감싸안고 싶어한다. 그러면 자기도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괜찮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이제 이강두가 아니면 안될 것 같다.


결국은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사고도 단지 두 사람의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며 서로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고따위 상관없이 지금 여기서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이야기다. 후회하고 갈등하고 때로 다투고 오해하고 엇갈리면서도. 사랑하는 이유 만큼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단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아버지의 말처럼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마침내 잊었던 기억이 돌아온다. 잊고 있던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되살아난다. 연출까지 멋지다. 기억이 돌아오며 시간이 교차한다.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그때 기댈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이었다. 하문수가 달려가고 이강두는 떠나간다.


그냥 이대로도 좋다. 조금 모자르고 한심한 몰골이라도 그곳에 있음으로써 자기가 기댈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자기가 지킬 수 있다. 기대고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 자기가 지켜야 한다. 멀리 돌아가는 일 없이 솔직한 자신의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찢기고 부서지고 상처입으면서도. 아직도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