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 오로지 기억하고 있던 단 한 사람

까칠부 2018. 4. 11. 11:03

결국 그거였을까. 단 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잊고 있는 가운데 기억하고 있던 단 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외면하는 가운데 여전히 함께 부여잡고 있던 단 한 사람이었다. 미움도 원망조차도 결국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예 모른 척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면하고 있으면 아무리 미워하고 원망해봐야 닿지 않는다. 딱 미워할 수 있을 만큼 원망할 수 있을 만큼 그래서 사랑할 수 있을 만큼.


혼자 뿐이던 법정에서 오로지 그녀를 위해 증인석에 앉아준 단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억지로 자신의 마지막을 보여주지 않으려 억지로 등떠밀어 보냈던 그리 밉고 원망스럽던 단 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잊고 있었다. 믿고 있던 변호사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 만큼이나, 자신이 그토록 아파하며 괴로워했던 시간들 만큼이나 그녀를, 그녀의 슬픔과 아픔을, 상처들을 모두 기억하고 간직했던 바로 그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인연만큼 거리만큼 그들은 운명처럼 사랑했고 잠시나마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떠나기 직전 안순진은 비로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닫고 만다.


남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겨진 이들이 겪어야 할 절망과 상처와 고통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기는 것이 없다면 남겨지는 것도 없다. 남겨질 것을 만들지 않는다면 남겨짐으로 인해 겪어야 할 고통 또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애써 모든 것을 끊어냈고 스스로 혼자가 되었다. 모두와 단절한 채 스스로 혼자 남겨지려 했었다. 이대로 혼자서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성공한 듯 보였는데 결국에 마지막 인연이 발목을 잡는다. 아내도 딸도 모두 버렸는데 도저히 버릴 수 없는 한 사람이 죄책감처럼 그의 발목을 잡는다. 사랑보다도 더 지독한 것이 죄책감이고, 연민이고, 그보다 더 강한 것이 또한 사랑인 것일까.


여전히 은경수(오지호 분)가 제과회사 회장(박영규 분)을 폭행한 장면은 괜한 사족처럼 보이고 있었다. 굳이 직접 손무한(감우성 분)을 찾아간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작은 회사인 것 같지도 않은데 회장씩이나 되어서 여기저기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업 회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이던가.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해가며 보여주고 싶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으니까. 더욱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아서 감정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원래 한국드라마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연출방식이다.


마침내 재판정에서 마주한다. 스스로 죽기 위해 떠나기 전. 마지막 유언까지 남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지막 법정에 서고 있었다. 재판 자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재판에서 이기고 지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원래 그것이 드라마의 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지나온 시간 만큼이나 얽히고 꼬인 인연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남겨진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 그것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