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 치명적인 모호함, 시작된 싸움

까칠부 2018. 8. 1. 02:00

예진우의 캐릭터가 답답해 보이는 이유는 시청자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지만 전적으로 의사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병원과 의사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구승효의 방식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차이라면 그럼에도 예진우 또한 의사로서 병원의 의사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로 전적으로 시청자의 편에 있지도 못한다. 시청자와 같은 풍경을 보면서 판단이나행동은 시청자와 전혀 다르다. 여기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시청자의 기대가 자꾸만 빗나가게 된다. 도대체 예진우는 왜 그런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는 것일까.

 

선도 악도 없다. 의사들이 추구하는 현실의 이익에 대한 계산은 아무래도 이익추구가 본질인 대자본쪽이 빠르고 강하다. 그런 한 편으로 의사들은 또한 잠까지 줄여가며 매순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영자로서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구승효 앞에서 의사들의 계산은 뻔하고, 매순간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의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구승효가 말하는 보편의 정의는 공허하게 의미를 잃는다. 당장은 의료사고로 환자를 죽이고도 그 사실을 은폐한 의사들에 대한 감정이 앞서지만 그렇다고 환자의 기록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문제다. 당장은 어느 한 쪽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다른 한 쪽을 응원하게 하지만 끝까지 그의 편에서 성공괴 승리를 응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역시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분명한 신념을 조여주는 주경문의 존재는 소중하다. 구승효의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으면서 정의롭지 못한 의사들로부터도 따돌림당하는 신세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주인공 예진우의 편이 되어 주고 있다. 주경문을 중심으로 예진우도 움직이게 된다. 주경문을 응원하기 시작하면 시청자와도 시선과 시야를 공유하게 된다. 편이 생긴다. 나가야 할 방향이다. 구승효와 예진우 두 주인공이 마침내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지금까지와 달리 예진우는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주장해야만 한다. 아마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아닐까. 구승효가 앞세운 자본의 논리든 의사들이 말하는 현실의 문제든 아직 대안없는 제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은 이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의 답을 찾아 나서게 될까.

 

역시 뭐니뭐니 해도 남 싸우는 것 보는 재미가 최고인 것이다. 구승효가 먼저 싸움을 걸었고 의사들이 맞받아쳤다. 서로 다른 속내를 감춘 채 뒤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인다. 환자의 죽음을 속이고 은폐한 의사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에워싸듯 그들의 반격을 지켜보는 구승효에게 이입하게 된다. 한 편으로 강자의 편에서 그 힘을 자기 것처럼 느껴보고 싶은 욕구도 있다. 드라마의 호흡이 빨라진다. 거칠어진다. 여전히 예진우만은 시청자와도 상관없이 한 발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숨어 있다. 예진우가 보는 동생 예선우의 환각은 어쩌면 그이 죄책감과 양심이 아닐까.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그런 식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싸움은 시작됐다. 의사들의 어설픈 싸움이 아닌 진짜 싸움꾼의 예비된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숨어 숨을 고르는 주인공이 있다. 또다른 주인공 구승효가 사는 세계의 추악한 일면도 병원의 그것과 대비된다. 아직까지 누가 이겨도 상관없다. 어느 쪽이 이기든 자기와는 상관없는 남의 싸움이다. 더 많은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노을도 예진우처럼 말하고 싶은 진실이다. 누가 승리하든 시청자의 승리여야 한다. 그러면 그 적은 누굴까. 최소한 의사들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악까지는 아니다. 어쨌거나 그들도 사람을 살리는 최전선에 서 있다.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내기에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하나의 모습만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저마다 복잡한 사정과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도 아직 쉽게 단정짓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서도 고조되는 긴장은 과연 진짜라 할 것이다. 쉽고 대중적인 드라마도 많은데 무겁고 복잡하고 호흡까지 느리다. 자신감인지 아니면 오만인지. 중요한 것은 답답한 가운데서도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음을 기다리게 만든다.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