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 명확하지 않은 전선과 캐릭터, 답답한 이유

까칠부 2018. 7. 31. 09:50

사람들이 의학드라마를 굳이 찾아보는 것은 병원과 의사들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의료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새삼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도 아니다. 그냥 살고 죽는 그 자체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 뿐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기에 오히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되는 병원이라는 공간과 의사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다. 더구나 드라마에서도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의사란 모두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성공한 직업 가운데 하나다. 그런 특별한 존재들이 모여서 아옹다옹하며 벌이는 갈등들도 흥미롭다.


하필 구승효가 의료와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병원의 의사들과 어떤 가치도 공유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점령군이었다. 의사의 논리가 아닌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병원을 지배하기 위해 내려온 인물이었다. 그래서 덕분에 드라마는 초반 의학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성을 벗어난 정복과 지배라는 새로운 정치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다른 경쟁자를 누르고 위로 올라가는 이야기여야 한다. 경쟁자는 다른 의사여야 했고 경쟁하는 수단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이어야 했다. 하지만 구승효와의 싸움은 다르다. 그렇다고 의사들의 편에서 구승효와 맞서 싸우기에는 의사들에게도 그다지 명분이 없어 보인다.


한 마디로 속물들이다. 의사로서의 사명감 만큼이나 의사라고 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그것을 자신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정작 적은 구승효인데 그들과 맞서싸우려는 의사들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거대자본을 등에 업고 자본의 논리만을 앞세워 병원과 의사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것은 구승효일 텐데도 그렇다고 그와 맞서 싸우려 한다고 의사들의 행동에 대해서까지 공감하게 되지는 않는다. 당장 구승효의 일방주의적인 행동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은 예진우(이동원 분)에 대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야 하는 병원과 의사들의 가치란 무엇인가.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그게 문제다. 싸움이 벌어졌으면 어느 쪽 편을 들 것인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의 편도 들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남의 싸움이 되어 버린다. 싸움은 자기 싸움이어야 재미있다. 물론 진짜 자기 싸움이 되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굳이 직접 싸우기보다 남의 싸움을 자기 싸움으로 여기며 유희로써 즐기게 된 것이다. 인간의 삶이 투쟁의 연속이라면 드라마 역시 그에 속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의 편에서 주인공을 억압하고 위해를 가하려는 적들과 맞서 싸우는 것을 끝까지 응원하며 지켜본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자신의 적들과 싸우는 이유가 시청자에게도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의 편에서 주인공과 감정을 공유하며 그의 싸움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드라마에서 예진우가 구승효와 맞서서 싸워야 하는, 그리고 마침내 구승효를 이겨야만 하는 당위란 어디에 있는가.


하긴 처음부터 구승효도 악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복자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병원 내부의 모순이 그를 불러온 측면이 더 크다. 더 넓게는 의료수가 등 정치사회적인 문제부터, 그보다는 병원 내부의 수많은 구태와 부조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노을(원진아 분)도 구승효에 대해 단지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라 말하고 있었다. 예진우 역시 구승효의 정책을 반대하는 글을 올렸으면서 정작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주변인이라기보다는 경계인이다. 병원 내부의 여러 모순들에 대해 벌써부터 인지하고 있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구승효의 일방적인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답답하다. 싸움이 시작되어 피투성이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남의 일처럼 서로 노려만 보고 있다.


드라마의 초반을 제외하고 사람을 살리는 장면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 장면도 그다지 크게 비중이 없다. 예진우나 이노을츼 출세와도 크게 상관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승효가 그룹 내에서 계속 승승장구하는 것도 아니다. 창업주와 혈연도 아닌 구승효에게는 처음부터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래서 모호하다. 너무 깊은 주제를 담으려는 것은 아닌가. 시청자가 미처 따라갈 수 없는 작가만의 고민을 일방적으로 풀어내려는 것은 아닌가. 아마 내일, 아니면 다음주쯤이 고비가 될 것이다. 일단 한 번 히트작을 내고 나면 바로 이런 점이 좋다. 조금 답답하고 지루해도 그러나 앞으로를 조금 더 기대해 보게 된다.


어떤 식으로 전선이 그려질까? 어떤 모양으로 인물들과의 관계가 명확해질까? 그리고 시청자는 누구의 편에서 누구와 공감하며 그 싸움을 지켜보게 될까? 아직은 아무도 주인공이 아니다. 진흙탕을 구르고 있을 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 집어던져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응원은 시작된다. 대개는 약자의 편이지만 그보다는 정의로운 편에 서게 된다. 주인공으로서 예진우의 캐릭터도 비로소 더 명확해진다.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존재감의 문제다. 정확히 공감의 문제다. 아직은 기다려 본다. 너무 천천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