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최후는 짧을수록 좋다. 괜히 쓸데없는 변명같은 것 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되도 않는 궤변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게 놔두어도 안된다. 그리고 더욱 최후에 다가올수록 더 비루해지고 더 비겁해지고 따라서 더 비참해져야 한다. 악은 악이고 적은 적이고 그를 응징하는 것은 정당하다.
한 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드라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악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마지막까지 주인공들의 반대편에서 더 크게 대립하며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켰어야 했는데. 그래서 더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고 더 통쾌하게 드라마와 함께 대미를 장식했어야 한다. 하지만 고작 모리 다카시가. 아무리 쵸슈 출신의 화족이라고 고작해야 육군 대좌에 지나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조차 어쩌면 역사에서 주인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어도 일본의 조선강제병탄을 끝내 막지는 못했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라도 두 사람을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었다. 같은 성을 쓰면서 손가락에 결혼반지까지 나누어 끼었다. 일본에 도착해서 한 사람은 황제의 명령으로, 다른 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총을 들고 헤어졌다. 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두 사람의 앞에 놓인 운명 역시 순탄치만 않다. 막연한 기대로 찾은 사진관에서 사진까지 찍던 그날 유진 초이는 고애신의 손을 잡고 미국 공사관까지 도망친다. 조선을 겁박하는 일본군 대좌를 죽이고 납치당한 조선의 대신을 구한 그들이 유진 초이의 국적에 기대어 미국의 도움을 구한다. 이후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정문을 구한 것으로 끝이 아니다. 모리 다카시를 죽인 것으로도 끝이 아니다. 구동매는 고애신을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조선에 남은 김희성의 선택은 무엇일까? 모리 다카시의 말처럼 유진 초이는 다시 조선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결국 유진 초이와 고애신은 조선과 운명을 함께 할 것인가. 여전히 해피엔드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조선의 병탄을 막아서 해피엔드가 아니다. 마침내 광복을 이루기에 해피엔드가 아니다. 작가개그처럼 집어넣은 고애신 부모의 이야기처럼. 내세에라도 부강해진 조선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루게 될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언제고 조선이 다시 독립하는 좋은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고애신의 말처럼 짧지만 화려한 불멸의 삶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진 초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조선은 너무 염치가 없다. 원래 애국심이란 그렇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나라가 위태로울수록, 더욱 애국심이란 기약없는 짝사랑과 같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나라를 구해야 하기에.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라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고애신을 사랑하기에 알면서도 속아준다. 고애신을 사랑하기에 떠날 것을 알면서도 함께 동행해 준다. 그리고 어렵게 이룬 지금의 지위조차 고애신을 위해 기꺼이 내던질 수 있다. 고애신이 지금 조선을 위해 싸우다 죽는다고 조선이 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광복을 이룬 조국 조선은 그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은 이미 그렇게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참 애달프다. 나는 어쩌면 평생 애국자 같은 것은 못될 것 같다. 그런데도 왜 그리 조국 조선은 자신들에 바라는 것이 많은 것인지.
정미의병이다. 해산된 신신군인들까지 합류하며 전국적으로 가장 격렬하게 이어진 저항이었다. 이를테면 대한제국 황실은 한양에서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고종이나 순종의 목숨을 건 결단이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 테지만 드라마에서와 달리 고종이나 뒤를 이은 순종이나 그럴만한 위인들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후 일어날 의병항쟁을 유진 초이의 말을 통해 예고한다. 너희들이 조선의 마지막 저항을 이끌라. 그리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만주로 연해주로 떠나 그곳에서 독립군의 항쟁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설사 힘이 부족해 빼앗기더라도 싸워보지도 않고 내어주는 일은 없기를. 아무것도 않고 내어준 것이 아니라 단지 너희들이 더 세기에 어쩔 수 없이 빼앗긴 것 뿐이다.
어차피 그 끝이 절망일 것을 알기에 더 안타깝다. 그래도 행복해지기를 바라기에 그것이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선은 위태롭고 그들의 앞에 놓인 운명 또한 험난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들은 살 수 있을까.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과연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비극의 시대에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발로 자신의 길을 가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롯이 그저 앞만을 보고 걸으려는 용기와 의지를 가지기 때문이다.
예고편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도 지운다. 아예 백지상태에서 오늘의 내용을 처음 보는 마냥 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유진 초이와 고애신과 구동매와 김희성과 그리고 히나와... 조선에 남겨진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역사는 비극이다. 인간은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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