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애국심은 짝사랑을 닮았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짝사랑이다. 하긴 어쩌면 짝사랑은 가장 순수한 사랑인지 모른다. 보답을 바라지 않으니까. 자기를 사랑할 것을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좋지만 아니라도 상관없다. 아무리 차이고 또 차여도, 아니 아예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무시당하면서도 오로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에만 충실하다. 자존심도 염치도 수치심도 없다. 그러다 심각하게 엇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짝사랑의 미덕은 그럼에도 마음이 다할 때까지 꿋꿋이 참고 참으며 상대를 지켜보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어차피 망해가는 나라 뭐 대단한 것을 해준다고 저리 목숨까지 내거는 것일까? 저 지고하신 임금님마저 남의 힘에 떠밀려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 고작 아무것도 아닌 백성 몇몇이 일어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진다고 저렇게까지 필사적이 되는 것일까. 새로운 황제의 명령으로 군대를 해산하겠다며 총구까지 겨눈 상황에 그 총에 맞아가며 목숨걸고 탈출해서 무모한 시가전을 벌인다. 차라리 반역이다. 역적이다. 임금의 명령마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임금이 명령하는데 단호히 거절하고 등돌려 뛰쳐나간다. 임금으로부터 받은 것도 없이 앞으로 받을 것도 없이 오롯이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걸고자 한다. 오래전 임금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적과 싸우다 죽어간 그의 아버지처럼.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임금이란 허깨비가 아니었다.
임금의 싸움이 아니다. 고종이나 조선왕실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작가 김은숙이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적확하게 꿰뚫는다. 임금이 강제 퇴위되고, 새롭게 세워진 임금의 명령으로 군이 해산된 상황에서도 백성들은 스스로 일어나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맞서싸우고 있었다. 임금의 명령이 아니라 백성 자신의 명령이다. 오랜 유교교육의 영향으로 나라의 주인으로 어느새 깨어나 있던 백성들 자신의 양심의 명령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강제병탄 당하고 불과 1919년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모여서 왕정의 복고가 아닌 공화정을 선포했던 것이었다. 더이상 황제가 지배하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정의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임금의 요청을 받은 일본군이 잔인하게 자발적으로 일어난 백성들의 의병을 진압하는 사이 백성들은 그런 일본군과 싸우며 임금마저 버린 나라와 백성에 대한 의식을 강하게 일깨우고 있었다.
누가 주인인가. 누구의 싸움인가. 고종은 이미 물러났다. 순종은 아예 일본제국주의가 세운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싸운다. 해산당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숨어 있던 의사들이 일본군을 향해 총을 겨눈다. 국적을 버렸던 이들이 자신의 사랑을 쫓아 조선으로 돌아온다. 더이상 일본의 낭인도 미국의 군인도 아닌 그들이 맨몸으로 다시 그녀를 만나려 한다. 카타르시스다. 그 순간 히나의 숨은 도움에 힘입어 더이상 동지가 될 수 없었던 고애신이 히나의 호텔을 묵고 있던 일본군과 함께 폭파시켜 버린다. 역사에 그런 장면따위 없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건 허구의 드라마가 아니던가.
보기 싫을 정도로 암울하다. 드라마 초반 보기 싫어서 괜히 딴짓하며 띄엄띄엄 보고 있었다. 비극이 싫다. 슬픈 이야기가 싫다. 아프고 그래서 안타까운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기가 괴롭다. 하지만 드라마는 말한다. 이것이 과연 비극인가. 조선 조정이 무능해서 끝내 일본에 먹히고 말았다. 대한제국 정부가 무능하고 무기력해서 끝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망한 것은 조선 왕실이지 백성이 아니다.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는 이상 백성은 망해도 망한 것이 아니다. 3.1만세운동이 그러했듯, 이후 수많은 조선에서의 저항운동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선의 백성이 살아있는한 백성의 조선은 살아 있는 것이다. 아직 싸우고 있고 아직 살아있는데 그것이 과연 비극이기만 할까?
어쩌면 나 자신도 역시 왕조사관의 함정에 빠져 있었는지 모른다. 왕이 항복했으니 백성도 모두 항복한 것이다. 왕조가 넘어갔으니 나라 역시 넘어간 것이다. 조선의 백성은 여전히 조선의 백성이었다. 일본제국의 신민이 아닌 오로지 식민지 조선의 백성이었다. 끊임없이 일어난 수많은 의거들과 그에 동참하거나 혹은 숨어서 응원했던 더 많은 조선의 백성들과 그럼에도 끝끝내 이어진 조선의 정체성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것이 조선이다. 고애신과 이름없이 스러져간 조선의 군인들과 핍박당하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 조선의 의병들이.
이야기는 그렇게 조선을 위해 싸우려는 이들에게로 중심이 옮겨진다. 임금이 아닌 진정으로 조선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중심이 된다. 현명하기로 따지면 일본의 눈치를 보며 황제더러 물러나라 압박하는 조정대신들이 더 현명할 것이다. 대세를 읽고 안전하게 그에 영합하며 이익을 꾀하는 그들이야 말로 영리할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끝내 후손을 남겨 생물학적 유전자를 이어간 것은 세조의 즉위를 도운 정난공신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의 정신을 지탱한 것은 후손조차 남기지 못한 사육신들이었다. 영리한 자들은 유전자를 남기고 무모한 이들은 그를 지탱할 정신을 남긴다.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은 영리했던 조정의 대신들이었을까? 아니면 어리석게 죽어간 수많은 이름없는 의병들이었을까?
고종이 너무 미화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차피 고종의 역할은 거기까지일 테니까. 3.1운동 당시 고종의 국상을 계기로 모인 군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만세를 외칠 수 있었던 것으로 족하다. 그들은 포기하지도 않았고 내어주려 하지도 않는다. 끝까지 싸우려 하며 아직도 싸우고 있다. 아직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역사와 로맨스를, 그리고 사실과 허구를 이렇게 멋지게 훌륭하게 엮어낼 수 있구나. 새삼 작가에게 감탄하면서. 이렇게나 애절하게 비장하게 감동으로 사람도 역사도 흘러간다.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비쳐진다. 그들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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