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궁금해 했을 것이다. 어째서 체격도 힘도 비슷한데 누구는 더 빠르고 누구는 더 큰 무게를 드는가. 겉으로 드러난 힘과 다른 감춰진 힘이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내공이라는 말도 그런 비슷한 뜻으로 처음에는 쓰였었다. 그러니까 지금 일반적으로 쓰이는 내공 그 자체의 의미로 처음에는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공이 무슨 기로 이루어진 신비한 힘으로 여겨진 것은 명에서 청에서 넘어가는 시기 명나라 유학자의 정신승리를 위해서였다. 한 마디로 겉으로 드러난 힘으로는 명의 한족이 청의 만주족에 졌지만 한족에게는 그 이상의 더 큰 힘이 감춰져 있다. 그것이 내공이다.
하지만 원래의 뜻은 지금 흔히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사람의 내면에서 비롯된 힘이다. 오랜 경험과 단련으로 생겨난 침착함과 냉정함, 기민함, 진중함, 과감함, 그리고 강인함 같은 것들이다. 지금 중국무술이 다른 종목과 붙으면 매번 처참하게 깨지는 모습만 보여주는 이유다. 실전을 겪어야지. 얻어맞아 봐야 한다. 그런 고통과 두려움에 직접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졌어도 그것을 제대로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대만 제대로 맞으면 정신을 잃고 허둥거리다 지레 나자빠지니. 언제부터인가 중국무술에서 실전이란 사라져 버렸다. 하긴 청말에 이미 화권수퇴라 해서 겉보기용 무술에 대한 비판이 나왔었으니.
아무튼 어쨌거나 몸집이나 가진 힘에 비해서 정작 실전에서 그만한 실력을 보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의문은 그럼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었다. 어떻게 하면 같은 몸 같은 힘으로 더 큰 힘과 더 빠른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이른바 내가권들이다. 내가권이라는 것도 사실 청말에서야 만들어진 개념이기는 하지만. 다만 목적은 분명하다. 사량발천근, 네 량의 힘으로 천 근의 힘을 내겠다. 그를 위해서 다양한 동작들을 고안하고 그를 위한 수련을 만든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으로?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많은 트레이너들이 말하는 근신경계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운동초짜들이 운동 시작하고 초반 놀랄 정도로 빠르게 무게와 반복회수를 올릴 수 있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아마 거의 석 달 잡을 것이다. 나 역시 그 기간 동안 너무 쉽게 운동이 늘어서 놀랐던 경험이 있다. 내가 이렇게 힘이 좋았던가? 이렇게 빠르게 힘과 근육이 늘 수 있는 것인가?
근육은 그다지 는 것이 없었다. 당연한 것이 1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대략 3킬로 넘는 정도의 근육만이 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석 달 운동한 것으로 근육이 놀랄 정도로 더 늘고 그런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은 쉽게 힘이 늘고 운동도 잘하게 되는 것일까?
전에도 썼었지만 운동할 때 근육은 혼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바벨컬이란 아주 단순한 동작만 하더라도 이두근이 주동근으로 쓰이지만 함께 삼두근이 길항근으로, 상완요골근이 협력근으로 쓰인다. 다시 말해 이두근만 쓰려 해도 삼두근과 상완요골근이 함께 적절히 움직여주지 않으면 온전히 이두근만을 쓸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근육인 삼두근과 상완요골근까지 함께 동시에 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근신경계다. 뇌에서 신호가 바로 근육에 전달되어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최적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어깨운동의 대표격인 밀리터리 프레스 역시 주동근은 전면삼각근이지만 측면삼각근과 삼두근을 협응근으로 사용하며 대흉근과 광배근이 길항근으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이들 근육들 이외에도 그 속에 숨은, 혹은 그 옆에 붙은 상대적으로 작은 근육들인 극상근, 극하근, 견갑거근, 소원근, 대원근, 소흉근 등도 어깨의 안정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이들 근육들이 약해지거나 불균형해지면 운동에 지장을 받는다. 정작 전면삼각근의 근력은 충분한데, 심지어 협응근인 측면삼각근이나 삼두근도 강한데, 길항근도 튼튼한데, 그러나 안정화 근육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자세가 불안정해지며 제대로 힘을 못 받고 움직임이 흔들리게 된다. 내가 한동안 밀리터리 프레스를 하지 않았던 이유다.
어깨와 등의 안정화 근육만이 아니다. 코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어가 지탱해주지 않으면 그처럼 무거운 무게를 받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관절이 안정적으로 그 무게를 받쳐주지 않는다면 역시 코어가 불안정해지므로 문제다. 그러니까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단순한 동작을 위해서도 몸에서 많은 근육이 한꺼번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냥 밀리터리 프레스가 아니라 하체의 반동을 이용한 푸쉬 프레스라면 더할 것이다. 더 많은 주동근과 협응근을 사용하는 말 그대로 전신운동이라 할 수 있는 데드리프트나 스쿼트 역시 그보다 더 많은 근육의 참여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 근육들이 필요한 때 적절히 조화롭게 움직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초짜들이 처음 운동을 시작하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온통 춤을 춰대는 것이다.
이런 동작을 할 때 어떤 근육이 어떻게 함께 움직이면 되는지 아직 내 몸이 알지 못한다. 밀리터리 프레스를 하는데 전면삼각근 말고 측면삼각근이나 삼두근, 혹은 광배근이나 대흉근, 아니면 대원근 같은 속근육들이 어떻게 움직이면 되는지 아직 자기 몸이 알지 못한 채다. 그래서 처음 걸음을 배우는 아이마냥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힘은 낭비되고 낼 수 있는 힘보다 한참 적은 힘만을 운동에 겨우 쓸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운동의 움직임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뇌가 학습하고, 신경을 통해 근육들이 학습한다. 그러므로 이런 신호가 보내지면 근육들은 이렇게 바로 반응해 움직이면 된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이도 비슷한 동작을 취하려 하면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제대로 자기가 가진 힘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같은 과정에서 중요하게 역할하는 것이 바로 속근육, 안정화근육들인 것이다. 큰 힘을 받는 것은 겉근육들이 한다. 힘을 쓰면 바로 보이는 근육들이 힘을 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관절을 안정화시켜주는 것은 바로 속근육들이다. 하긴 속근육이라 하지만 코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복직근은 바로 한 눈에 보이는 근육이다. 이소룡이 가장 강조했던 것이 바로 이 복직근이다. 상체의 힘을 하체로 전달하고 하체의 힘을 상체로 전달하는 말 그대로 단전의 역할을 한다. 어떤 동작을 하든 코어가 먼저 반응해서 안정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제대로 힘을 쓰기란 어렵다. 대부분 내가권들도 이런 속근육을 단련하는 것은 목표로 동작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근력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느리고 완만한 동작들은 그러나 그런 속근육을 단련하는데 최적화된 동작일 수 있다.
그러니까 발차기도 그냥 발만 들어올려 차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코어와 둔근의 안정화근육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더 많은 근육의 참여를 끌어내어 더 큰 힘을 내어 걷어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같은 발차기라도 축구의 발차기와 무술의 발차기가 다른 이유다. 쓰이는 근육들이 전혀 다르다. 같은 주먹질도 무술의 주먹질과 권투의 주먹질은 다르다. 실제 쓰이는 주동근은 같아도 협력근과 길항근, 안정근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다른 작용을 하고 다른 힘을 낸다. 그것을 경험적으로 이론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내공이 아닐까. 여기서 이런 식으로 동작을 연습하면 전혀 상관없는 동작에서도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이 근육들의 움직임을 훈련하면 필요한 동작에서 필요한 더 큰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아무튼 초짜일수록 운동을 마치고도 여전히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더이상 운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을 만큼 몸은 지쳤는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정도로 근육에는 아직 힘이 남아 있다. 그 힘을 끌어내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 힘을 모두 쥐어짜 운동에 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근신경계이고 오래전 무술가들은 사람의 몸에 숨겨진 신비한 힘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 힘만 끌어낼 수 있다면 사람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숨겨졌다기보다는 아직 찾지 않은 휴면계좌라 해야 할 것이다. 온전히 찾아서 쓰기에는 힘들고 긴 과정이 필요할 테지만.
아마도 그 힘이 흐르는 방향이 경락이 아니었을까. 힘이 근육과 근육의 협력과 조화를 통해 움직이는 방향들을 도식화한 것이 경락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허튼 생각이다. 이른 아침이라.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검진 결과 - 역시 운동을 해야 한다 (0) | 2018.11.18 |
---|---|
키 작은데 어깨가 벌어지니... (0) | 2018.11.09 |
유산소운동보다 근력운동이 필요한 이유... (0) | 2018.11.03 |
머신과 프리웨이트... (0) | 2018.10.31 |
비하인드 넥 프레스의 또다른 사용법... (0) | 2018.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