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경인 줄 알았다. 새엄마 허진옥의 친딸이. 아빠가 어린 시절 주입하듯 들려준 기억들이라는 것이 더 그런 의심이 들도록 만들었다. 새엄마 허진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새엄마 허진옥을 친엄마처럼 따르고 있었다. 마치 본능처럼 새엄마 허진옥에게 이끌리는 듯 보였다. 함정이었다. 오히려 극도의 공포가 감히 상대를 거스르거나 거부하는 것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마치 짐승처럼 공포에 의해 길들여진 것에 불과했다.
짐작처럼 지금까지 붉은 울음에 의해 '응징'된 아동학대들은 모두 차우경을 위한 퍼즐조각들이었다. 마지막 대상이 된 한시완이야 말로 봉인된 비밀의 방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차우경은 한시완이었으며 하나이기도 했다. 어른들이 강요한 거짓을 진실로 믿고 수십년을 살아온 또 한 사람 희생자였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차라리 저항하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공포이고 고통이라면 차라리 그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야 자기라도 더이상의 공포로부터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괜찮을 수 있다. 그래서 일방적인 관계를 이용해서 저질러지는 대부분 폭력은 대상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이 유전되는 이유다. 폭력의 희생자가 또다시 가해자가 되고 마는 이유인 것이다. 당장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합리화가 자칫 폭력 그 자체를 긍정해 버린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다.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되기 위한 어떤 준비도 다짐도 없이 갑자기 엄마가 되어 버린 차우경이 사고로 죽게 한 남자아이의 젊은 엄마도 그를 위한 조각이었을 것이다. 엄마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성도 역시 학습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혹은 주위로부터 충분히 배우고 익히고 체화하지 않으면 훌륭한 엄마도 좋은 아빠도 절대 될 수 없다. 갑자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하고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다시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야 했다. 문득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못된 계모들도 사실은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엄마로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까? 결국 허진옥은 자신의 친딸마저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받지도 못했다. 어쩌면 평생을 방치한 친엄마와의 관계에 그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마음먹고 찾아내려 하면 찾지 못하는 것이 없다. 알고자 하면 알아내지 못할 것도 없다. 비밀이랄 것도 없이 사소한 단서들로도 강이헌은 너무나 쉽게 윤태진의 정체를 밝히고 만다. 그래서 또 더 불안해진다. 이제는 거의 끝에 다가와 감에도 이것으로 진짜 끝인 것인가? 이번에야 말로 진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인가? 하지만 이미 차우경의 과거도 밝혀졌고 녹색옷을 입은 소녀의 정체도 알게 됐다. 더 남은 것이 있을까? 어떻게 윤태진은 붉은 울음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모두 앞에서 드러내게 될까? 그 연출과 묘사에 이 드라마에 대한 모든 평가가 결정될지 모르겠다. 어떻게 윤태진은 붉은 울음이 되고 붉은 울음이 윤태진이 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다시 어떻게 차우경과 접점을 가지게 될까?
진실이라 여겼던 것이 거짓이 되고, 거짓은 다시 진실로 바뀐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그렇게 아이들은 취약하다. 그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참혹한 범죄가 끝내는 피해자인 아이들을 다시 가해자로 만드는 뉴스를 보고 난 터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기에 어른인 것이다. 세상은,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성에게만 맡기기에는 그 모성조차 너무나 약하기만 하다. 아니 인간 자체가 너무나 약하다. 강자는 악해지지 않아도 강자다. 약자는 악해짐으로써만 비로소 강해질 수 있다. 모든 아이들과 너무나 약한 엄마들을 위해서. 마치 원죄처럼. 시청률이 높게 나올만한 드라마는 아니다. 너무 무겁다. 우울하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그래도 게임보다는 현실, 문득 밀려드는 답답함 (0) | 2019.01.14 |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마침내 밝혀진 폭주의 비밀, 그리고 유진우의 소설 (0) | 2019.01.13 |
붉은 달 푸른 해 - 마침내 드러나는 진짜 붉은 울음의 정체, 소녀의 비밀이 풀려가다 (0) | 2019.01.10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함께 지옥으로, 다시 게임으로 (0) | 2019.01.07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갑작스런 현자타임, 현실의 지루함 (0) | 2019.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