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유진우가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추측만으로 너무 소설을 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 소설이 쓸데없이 디테일하기까지 하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세세한 부분들은 직접 보거나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들이다. 아무리 대충 추측만으로 사실을 구성하려 해도 대부분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상상만으로 채워넣는 경우란 드물다. 물론 아예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작가라면 다르다.
어쩌면 이것은 정신사나울 정도로 회상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구성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낯선 장르다. 증강현실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소재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이것저것 설명할 것이 많다. 게임 자체에 대해서만도 시청자들에 설명할 것이 많은데 그 주변의 이야기까지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들려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모두 한 방향으로 배치하면 정신사나운 정도가 아니라 병목에 걸릴 것이다. 만일 드라마에 정세주까지 화자로 등장해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과잉된 정보에 대한 소화불량으로 시청을 포기하는 시청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줄거리를 잡고 거기에 가지를 더하고 옹이를 더하는 식으로 최대한 구성을 단순화시켜 시청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니까 유진우의 추리는 유진우 자신이 쓰는 소설이 아닌 작가의 나름대로 친절한 설명이었던 것이다.
게임이 미치게 된 계기도 그렇게 밝혀진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납득되지 않았는데, 프로그래머도 아닌 유진우가 단지 엠마라는 캐릭터의 능력을 듣는 것만으로 그 원인이 엠마에게 있음을 알아차리고 만다. 알아차리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미치게 되었는가 그 원인까지 유추해 버리고 만다. 누군가 결투가 금지된 엠마 앞에서 진짜 무기를 사용하고 말았다. 엠마의 통제를 벗어난 진짜 무기의 사용이 엠마로 하여금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폭주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서 마르코가 세주를 찌른 사실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유진우는 어떻게 추리했을까? 흔히 아무 증거도 단서도 없이 하는 추리를 사람들은 망상이라 부른다. 하지만 필요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원인은 자기 앞에서 누구도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법칙을 가진 게임캐릭터 엠마의 폭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엠마의 모델은 다름아닌 유진우의 새연인 정희주다.
현실의 위기는 가속화된다. 잠잠하던 고유라까지 끼어든다. 아마 이마저도 차병준이 의도한 것일 게다. 이제와서 되돌리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왔다. 이제 겨우 정희주를 통해 퀘스트를 끝낼, 즉 정세주를 찾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았는데 경찰이 그를 살인용의자로 뒤쫓고 있다. 겨우 차병준을 설득하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는데 현실은 살인용의자로 쫓기는 신세다. 이것 역시 정신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것 없이도 얼마든지 드라마는 재미있었을 텐데.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의 위기와 겨우 끝이 보여가는 게임의 퀘스트가 또 한 번 의미없이 교차한다. 그래도 퀘스트는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차병준 자신마저 손놓아 버린 현실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희주는 여전히 의미없이 그곳에 있다. 엠마와 같다. 유진우를 위해 휴식과 치유의 장소를 제공하고, 그를 위한 게임의 단서를 제공한다. 왜 굳이 박신혜를 캐스팅했는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사실 아무나 해도 상관없다. 보이기에만 그럴 듯하면 누가 해도 괜찮은 역할이다. 그만큼 비중이 약하다. 근래 가장 여주인공의 비중이 없는 드라마인지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그럴까? 어찌되었든 이번주도 재미있었다. 내일도 재미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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