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처럼 드라마에서도 일정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작은 퀘스트를 끝내면 작은 보상이, 큰 퀘스트를 끝냈으면 큰 보상이, 긴 시간을 진지하게 집중해서 플레이했으면 그에 걸맞는 특별한 보상이 반드시 주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기껏 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긴 시간을 플레이했는데 주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점수든 아이템이든 레벨이든 무엇이라도 주어져야 게임을 플레이하는 보람이 있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까지 판을 크게 키우며 시청자 역시 상당한 감정의 소모와 함께 기대가 생기게 되었다. 지금 이 고비만 넘기면 뭔가 해결이 나겠구나. 이렇게 다급하게 막다른 궁지에까지 몰렸는데 당장의 위기만 넘으면 어떻게 끝이 보이겠구나. 물론 게임 가운데도 마지막 보스라 여기고 모든 노력을 들여 잡았는데 그 뒤에 다른 보스가 나와서 플레이어를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다. 마지막 던전이라 여기고 모든 아이템을 소모하며 끝냈더니 그 뒤에 다른 던전이 숨어있었다. 그것도 한두번이다. 그마저도 최소한 자기가 플레이한 만큼 중간보상 정도는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조차도 없이 그냥 중간에 끊으며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아직, 아직, 아직... 놀리는 것도 아니고.
유진우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게임의 치명적인 버그를 삭제중이던 엠마의 손을 중간에 자기 손으로 떼어낸 순간 도대체 뭔가 싶었었다. 유진우가 퀘스트를 끝낸 결과 돌아온 세주 역시 지금까지 기대와는 달리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듯 보이는 모습에 허탈감마저 느꼈다. 유진우 자신과 한 공간에 단 둘이 있었던 차병준의 죽음은 또다른 퀘스트나 다름없었다. 아직 차형석의 죽음에 대한 혐의도 풀지 못했는데 그 아버지인 차병준마저 용의자 유진우와 함께 있다가 죽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결국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던 차병준의 제거가 목적이었을까? 그마저도 유진우가 아닌 차형석의 망령이 대신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응징이었을 테지만 정작 유진우와 상관없이 운명처럼 이루어진 일이었다. 지금 유진우는 도대체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안다. 다음에 있다. 아마 내일 마지막회 미뤄두었던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분량이 가리킨 결말은 이번 회차였다. 유진우가 퀘스트를 끝내고 정세주가 돌아온 바로 다음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래서 유진우는 모습을 감춘 것이고 정세주가 대신 돌아온 것이다. 기만처럼 회상을 반복하며 시청자를 농락한다. 마치 시청자를 놀리기라도 하듯 지금껏 감춰두고 있던 패들은 자꾸 리플레이하며 보여준다. 너는 속았다. 너는 지금 터무니없이 오해하고 있다. 진짜는 이거다. 사실은 이런 것이다. 내러티브의 빈곤함을 가리려는 꼼수다. 이대로는 너무 뻔히 보이니 작가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치트를 쓴다. 역시 한두번은 재미있다 웃으며 볼 수 있지만 너무 반복되면 그냥 짜증만 난다. 내가 고작 작가의 놀림거리나 되려고 내 시간 들여가며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니다. 반전이라기보다는 뜬금없는 것이고, 의외라기에는 맥락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술함을 잔재주로 대신한다.
박신혜는 제작진을 사기로 고소해도 좋을 것이다. 현빈은 답답해도 주인공답게 분량이라도 있었지, 하긴 정희주보다 엠마 쪽이 드라마에서 비중이 더 크기는 하다. 정희주보다는 엠마를 위해 출연했다 봐야 할 것이다. 거의 공기나 다름없이 가끔 민폐나 끼치는 김상범이나, 거의 출연이 없다가 뒤늦게 등장한 정세주에 비해 정희주가 나을 것이 무엇이던가. 그냥 사랑할 상대가 필요했다. 주인공을 위한 히로인이 필요했다. 그에 걸맞는 네임밸류의 여배우가 필요했었다. 없어도 드라마에는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나마 고유라는 현빈을 위기로 내몰기라도 하지 엠마 아닌 정희주가 드라마에서 하는 일이란 그저 마지막에 가만히 지켜보다 돌아서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까지는 그래도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망감도 크다. 그보다는 배신감이다. 차라리 스카이캐슬을 볼 것을. 내일 마지막회를 봐야 할까? 마치 작가의 자위와도 같다. 열심히 애무만 하다가 마지막엔 혼자 자위만 하다가 끝난다. 게임만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청자 없는 드라마란 의미가 없다. 그저 시청자를 자신의 작품을 위한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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