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못해 블로그에 허접한 글이라도 쓰는 것도 그렇다. 나는 굳이 그것을 자의식과 수치심이라는 말로 설명하고는 한다. 내가 이만큼 썼으니 사람들이 알아봐줬으면 하는 자의식과 그럼에도 고작 이런 정도의 글을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수치심의 경계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득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잘난 척 뻐기면서 쓰고, 그러고는 마음에 안들어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런 점에서 오로지 순수하게 자기 글을 읽히고 싶다고만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대단한 재능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작가들이 좋게 말해 개성적이고 까놓고 말해 괴팍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사랑하는 감정과도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어찌되었든 당장에라도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조급함과 그러다 혹이 어쩌면 하는 두려움이 짧은 순간에도 몇 번이나 교차한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진지한 감정일수록. 그래서 더이상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어지지도 못하며 그저 주위만 맴돌게 된다. 그렇게 짝사랑은 시작된다. 혹시라도 부서질까 날아갈까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못하고 그렇게 긴 세월을 외사랑에 애끓이고 만다. 하필 그 시작이 아직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미숙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경험들이 이제는 끝날지 모르는 시작을 두려워하게 된다. 차라리 이대로 아는 누나와 동생 사이인 채로도 괜찮지 않을까.
좋은 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출판사 직원들의 순수한 마음이 전해진다. 단지 가능성만을 보고 무려 3년이나, 그것도 몇 번이나 그만두겠다는 작가의 변덕까지 달래가면서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낸다. 그래봐야 초판 5천부가 너무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서 2쇄 3쇄 4쇄도 계속 찍어내고 싶다. 갓 인쇄되어 나온 책을 받으면 그 잉크냄새가 그리 뿌듯할까? 경단녀 강단이의 부활마큼이나 코믹하게 그려지는 출판사의 사정도 관심을 잡아끈다. 우리나라 출판계가 어쩌면 이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한 편으로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채 자신의 커리어만을 위해 살아가는 독신여성의 고독도 다루고 있다.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40대가 되도록 결혼않고 혼자 사는 것은 비정상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여성으로서 자기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공까지 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는 순간 고유선 이사 역시 강단과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하루종일 아이 돌보고 살림이나 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동안 자신이 이룬 모든 성취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래도 배우자 잘 만나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삶을 사는 또래의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는 그저 남편과 아이, 시가의 이야기만 있을 뿐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뒤웅박이란 말처럼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자신의 삶을 정의한다. 시시하고 재미없다.
고유미가 강단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포기해가며 이룬 것들을 강단이는 이제서야 뒤늦게 기어나와 가지려 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배경은 알지 못해도 도대체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와서 자신의 자리까지 넘보려 하는가. 여성으로서 자신의 일로 성공해서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은 커리어우먼으로서 그녀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할 것이다. 단 하나 그녀를 지탱하는 자긍이고 자존이다. 다만 한 편으로 혹시라도 그런 강단이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자신이 이룬 것들에 대한 불안이나 회의는 아닐까?
사실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한 구도인 것이다. 대부분 남성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성공을 지지해주는 여성의 내조가 뒤따른다. 괜히 이혼할 때 결혼기간동안 생성된 재산에 대해 절반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 반해 대부분 여성들은 혼자다. 남성들의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자신의 일에만 전력투구하는 동안 결혼했으면 내조도 겸해야 하고, 결혼하지 않았으면 혼자서 그런 남성과 경쟁해야만 한다. 그래서 강단이에게도 차은호의 존재가 절실하다. 마치 내조하듯, 그래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서 좋은 것이다. 서로 구속하지 않는 사이이기에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 그 도움을 받는다. 차은호가 있기에 회사에서는 집에서는 의지할 수 있고 조언도 구하고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강단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싸움이란 것이다. 그러나 강단이도 이미 한 번 벌써 오래 전에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 다른 아내들처럼 자신의 일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아마 고유진과의 대립구도는 그런 의도로 설정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대편에 살림과 육아를 겸하면서도 고유진과 경쟁하는 또다른 여성 서영아가 있다.
결국은 여성의 이야기다. 일과 사랑을 모두 이루고 싶은 욕심많은 젊은 여성에서, 일과 사랑 어느 한 쪽을 포기해야 했던 기성의 여성들과 그리고 어찌되었든 둘 모두를 힘겹게 양립해가는 여성들까지. 오히려 드라마에서 남성은 트로피같다.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완벽한 남자들이 그런 여성들의 주위를 맴돈다. 그들의 고단한 노력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현실에 없을 것 같은 남자들이다. 항상 여성을 존중해주고 지지해주고 그 곁을 지켜준다. 전적으로 내조까지 해주는 남성이라면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남성의 성공의 절반은 여성의 몫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은 그렇게 서로를 지탱해주고 보완해주는 관계다. 젠더갈등이 첨예한 요즘 더욱 굳게 믿게 되는 진실이다.
아무튼 강단이와 차은호, 혹은 송해린과 지서준의 로맨스 만큼이나 그 배경이 되는 여성의 현실이나 출판계의 상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단단한 현실의 기반 위에 쌓아 올린 환상의 탑이랄까? 그래서 더 단단하고 더 설득력있는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현실은 당연히 그보다 더 고단하고 더 비루할 테지만. 그래도 어딘가는 그런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들이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다만 그럼에도 강단이처럼 송해린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내가 아저씨라서일지도. 아름다운 여성은 아름답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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