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 사직서와 스카웃, 겨루로 돌아가다!

까칠부 2019. 3. 17. 10:39

결국 이렇게 다시 돌아온다. 갑자기 이야기가 공모전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뻔히 예상했던 결과이기에 새롭지는 않다. 어째서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거부하고 대기업만 선호하는가. 일자리가 없어 난리인 시대에 오히려 중소기업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아우성이다.


물론 중소기업이라고 모두가 드라마의 출판사 같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겨루만 해도 얼핏 보이기에 출판불황기에 나름 매출도 규모도 상당한 대기업처럼 보이지만 그래봐야 전체 기업 가운데 보면 직원 수도 얼마 안 되는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확실한 체계가 있고 분명한 비전이 있다. 사장 김재민이 그리 허술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일 게다. 그렇게 허술한 인물이었으면 저리 개성도 강한 창립멤버들이 그를 아직도 사장이라고 따라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더 엄격하게 바로 옆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고유선 이사가 있다.


아무튼 고작 사장부부 포함 4명이 전부인 출판사라고 아예 체계라는 것이 없다. 체계가 없는 것을 넘어 비전도 없다. 어떤 책을 어떻게 출판해서 돈을 벌거나 회사를 키우거나 최소한 보람이라도 얻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없다. 그냥 적당히 돈되는 것들만 찾아서. 그냥 당장 들어가는 돈 아껴가며 어떻게 회사만 유지될 수 있으면.그나마 회사라도 유지되어야 어디 가서 사장입네 내세울 수 있을 터다. 차라리 책을 내는 그 자체를 좋아하고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남이 번역한 것을 베껴서 짜깁기까지 한 내용을 당당히 자기 출판사 이름으로 내놓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을 모욕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그만둔다. 어쩌면 강단이의 첫직장이 푸른마음 출판사였다면 사정은 달랐을지 모른다.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출판업이라는 게 그런 것이겠거니. 겨루에서 일하며 느꼈던 뿌듯함같은 것이 없었다면.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다. 그런 일을 모두와 함께 해내고 싶다. 그래서 출판업계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모독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자리가 있어도 일을 할 수 없어서 문제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건 거기서 거기라 어디를 가든 푸른마음과 같은 영세기업은 채이도록 널려 있다. 보람도 없고 성취감도 없고 그저 오늘을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그런 바닥의 직장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살기 위해 그런 곳에 몸담고 있다.


아마 로또가 많이 팔리는 이유일 것이다. 로또만 맞으면. 이번주 로또만 당첨되면. 그래서 다음주도 이번주 로또만 담첨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한 주를 버티고, 또 한 주를 버티고, 회사가 먼저 망하든, 아니면 내가 먼저 그만두든. 작다고 체계도 없고 작으니까 비전도 없고 그렇게 가족끼리, 지인끼리 주먹구구로 대충 오늘만 꾸려간다. 그런데도 일자리가 없으니 그런 곳이라도 찾아가 일하라는 것인가. 한 사람은 남았고 한 사람은 뛰쳐나왔다. 다행히 그 순간 겨루의 대표 김재민이 찾아와 강단이에게 스카웃을 제의한다. 경우를 아는 사람이다. 자기 회사를 그만둔 전직원이 아니라 이미 다른 회사에 다니는 다른 회사의 인재를 스카웃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름의 강단이에 대한 사과이며 예우인 것이다.


지서준의 정체는 너무 쉽게 밝혀진다. 아니 강병준 작가가 보냈다 여긴 소설 자체가 지서준 자신이 써서 보낸 것이었다. 송해린이 파쇄해서 버리려던 소설을 읽었었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작가의 정체를 밝혀낸다. 여기까지 와서 출생의 비밀인가 싶지만 이제 남은 것은 그런 정도 뿐이라. 차은호와 강단이의 사이도 너무 쉽게 풀리고, 겨루에서 정직원으로 일하는 것도 역시 쉽게 풀렸고, 나머지 소소한 일상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것이 지서준과 강병준의 관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하나쯤 비밀이 더 감춰져 있지 않을까.


박훈과 오지율도, 김재민과 고유선 이사와의 관계도, 서영아와 봉팀장의 사이도,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이상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이어져간다. 마치 전혀 모르던 사이이던 강단이와도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고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모두가 기뻐하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모두는 마지막에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그것이 또 드라마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그만두고 싶어지는 터라. 그럼에도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지갑에 넣어둔 로또를 보며 버텨 본다. 이것만 맞으면 바로 사표쓰고 지중해로 놀러가겠다. 아, 고양이 때문에 안되겠다. 잠도 실컷 자고 게으름도 마음껏 피우면서. 모든 직장인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 터다. 강단이의 용기가 그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