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진심이 닿다 - 모두의 사랑과 한 사람만의 사랑

까칠부 2019. 3. 15. 05:57

생각보다 싱거웠다. 예고편을 보았기에 쉽게 풀릴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설마 이렇게까지 간단히 빨리 해결될 줄이야.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시련이 찾아온다. 만인의 연인을 한 사람만의 연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오히려 '내 여자'라고 당당히 선언했기에 나만의 여자로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랑한다고 사귀고 있다고 떳떳하게 밝힐 수조차 없다. 하지만 자신 만큼이나 그녀를 사랑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오윤서가 스스로 연예인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팬이란 그런 것이다. 차라리 연예인따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겠다 한다면 그것대로 응원해준다. 평범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다면 행복할 수 있기만을 빌어준다. 그래서 굳이 오윤서의 드라마 복귀를 돕기 위해 자신의 로펌에 시한부로 일할 수 있도로 자리를 마련하고, 오윤서가 다시 배우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을 알았을 때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오윤서와 권정록의 사이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윤서와 권정록의 서로에 대한 감정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윤서가 다시 원하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니까. 누구보다 자신이 있어야 할 그곳에서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니까. 그런 게 팬이 아니던가. 그를 위해서라면 연준규는 기꺼이 악역을 맡을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은 절대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때로 다른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평범한 행복을 바란다고 정작 가장 간절한 꿈을 포기케 한다면 그 후회는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2년만에 겨우 찾아온 기회를 이대로 흘려보낸다면 어쩌면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은 오윤서 자신일 것이다.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무려 2년 동안이나 아무 일도 벌이도 없던 오윤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소속사 대표 역시 그저 이익만 바라고 그리 오윤서를 감쌌던 것은 아닐 터다. 그래서 매니저 역시 스스로 진부한 대사나 읊는 악역을 자처했던 것일 게다. 그만큼이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다. 그것은 차라리 권정록에게 절망이었는지 모른다. 내 여자지만 나만의 여자가 아니다.

 

그래서 더 애닲다. 아니 그 순간 만큼은 바로 찢어놓고 싶을 정도로 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입술이 말랐다며 권정록의 입술에 묻은 립밤을 훔칠 때는 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역시 남 잘 되는 꼴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차라리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그래서 로맨스드라마를 볼 때도 둘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상의 에필로그는 거의 보지 않고 넘기는 편이다. 하지만 결코 오래갈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아니 최소한 잠시의 이별은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보상처럼. 혹은 더 큰 시련처럼. 과연 그 달콤했던 시간들은 두 사람에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줄까? 또다른 후회와 미련을 남게 될까? 과연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은 행복하게 웃으며 서로를 볼 수 있을까.

 

단변의 일편단심만큼이나 지독한 에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최변의 내면이 흥미를 더한다. 역시 마마보이를 공략할 포인트는 상대의 에고를 자극하는 것일 게다. 마치 엄마처럼 자신을 위해주는 이성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만다. 그마저도 철저히 자아도취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최변답달까. 단변의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이타가 이기가 되고, 최변의 마마보이다운 이기가 또한 단변을 향한 이타가 된다. 딱 튀어나오고 들어간 요철이 맞아 떨어진다. 이런 천생연분도 없다. 사랑할 때 단변은 무척 귀여워진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게 된다.

 

김세원과 여름이 헤어진 이유도 조금씩 밝혀진다. 김세원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권정록의 집에 얹혀 사는 이유다. 싫어서 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련이 남았고 그래서 애써 밀쳐내면서도 주변을 맴돌았던 것이었다. 다시 기회가 왔고 김세원은 그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그때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 다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윤서가 다시 배우로 돌아간다. 전화위복으로 이강준의 실체가 드러나며 당시의 진실까지 모두 밝혀진다. 대중의 변덕스런 호감이 다시 오윤서를 세상의 중심으로 돌려놓는다.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인 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이번에 양보해야 할 지 모르겠다. 자신이 결심하기도 전에 주위에서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자신의 길이고 자신의 꿈일 터이기에.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리고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부쩍 성장하기도 했다. 여전히 그녀는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과연 권정록과 오윤서의 사이는 어떻게 진행될까? 하지만 어차피 코미디라서. 사람이 웃는 이유는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란 그렇게 사랑해서 결국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장르 자체가 스포일러다. 때로 그런 것이 너무 아쉽다. 그래도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에 너무 사람들이 지쳐 있기도 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배우들일 것이다. 부디 행복하기를. 그런데 너무 행복하지는 말기를. 한 주를 또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