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 나약하고 비겁한 대중의 선의, 그러나 그들의 정의와 함께

까칠부 2019. 5. 8. 16:57

그럼에도 비겁한 대중의 정의는 영웅을 바라게 된다. 선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정의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단지 나약한 것이다. 단지 비겁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를 찾게 된다.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이 하지 못한 일들을 이루어 줄 누군가를 찾아 기대게 된다. 혹은 영웅이라 부르고 혹은 카리스마라 일컫는다. 대신해서 앞장 서 줄 선지자이고, 대신해서 희생해 줄 순교자다.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정확히 도울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만큼 강한 상대였으니까. 그만큼 무서운 상대였으니까. 법마저 우습게 여긴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알기에 불리한 법은 무력화시키고 유리한 법은 철저히 이용한다. 법이란 그런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아직 말단에 불과한 이들에게 법이란 오히려 자신들을 옭죄는 함정이 될 수 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절망하고 좌절하며 끝내 체념하게 된다. 그들을 닮아가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그 단단한 구조에 아주 작은 흠이라도 낼 수 있다면. 그래서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아낼 수 있으면.


마지막 장면에서 명성그룹을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도록 서류에 사인하는 장면은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희망일 것이다. 어쩌면 MBC 자신을 위한 변명이자 하소연이었는지 모른다. 단지 침묵하고 있었을 뿐 모두가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아직 기회가 없었을 뿐 자신들에게 선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명성그룹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함께 다시 또 한 번의 싸움이 시작된다.


역시나 드라마를 만드는 법을 안다. 노동부 차관과 골프약속까지 잡았다. 조진갑의 자리에 돈을 가져다 놓고 선물을 전달했다며 우도하에게 전화를 건다. 조진갑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위기를 빠져나갈까 한껏 긴장하고 있을 때 함바집에서 아무 대책없이 우도하와 마주앉아 있던 그 순간의 진실이 드러난다. 천덕구가 고말숙의 핸드폰을 도청하여 그 사실을 알고 그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 이전에 명성건설의 공사장에서 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집단민원을 받아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침착하게 냉정하게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최서라의 함정을 부수고, 끝내 최서라의 빈틈을 찾아내어 역공의 발판을 만들어낸다. 조진갑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만 주어지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조진갑의 편에 서 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약하고 비겁하지만 그러나 기회만 주어지면 손을 잡아 줄 그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조진갑도 마음놓고 명성이라는 거대한 벽과 부딪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드라마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