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 우도하의 계획과 최서라의 아지트를 찾아낸 조진갑

까칠부 2019. 5. 14. 07:05

진실과 진심을 전제하지 않은 합의란 때로 거래의 다른 표현이 된다. 돈으로 계량하는 것이다. 자신이 겪을 고통을. 자신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를. 원망과 안타까움을. 그럼에도 돈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고단함이. 처절함이. 그래서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

 

영화 '1987'에서 어쩔 수 없이 당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화장한 아들의 뼈를 얼어붙은 강에 뿌려야 했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정작 피해자인 자신의 동의도 받지 않고 멋대로 합의해 버린 부모에 반발해서 자기가 소송을 했던 어느 여학생의 이야기도 문득 생각난다.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자기는 몰라도 딸 만큼은 번듯하게 걱정없이 자랐으면 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죽고 세상에 없는 사람을 대신해서 그가 당했을지 모르는 일들을 돈과 바꿔야만 한다. 그 잔혹함이. 그럼에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의 비루함과 초라함이. 자신의 나약함이. 과연 죽은 그 사람은 자신을 용서할 것인가.

 

아마 누구보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우도하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돈과 바꿨다. 돈과 바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자기가 그랬으니 다른 사람도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변명일 것이다. 자기합리화일 것이다. 그러면서 발버둥이고 울부짖음이다. 아무라도 자기에게 괜찮다 잘했다 말해 줄 수 있었으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그래야만 했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위로해 줄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우도하가 꾸미고 있는 계획의 배경에도 그같은 사정이 숨어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듯 그들도 용서하지 못한다.

 

혹시라도 덕구가 구대길의 협박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느새 드라마의 패턴을 알아 버렸다. 드라마는 코미디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당장의 고비나 위기는 있어도 결국에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안도하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예고편의 내용이 상당히 심각했음에도 전혀 걱정같은 건 하지 않는 이유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돌파하고 넘어서 해결할 수 있을 테지. 그렇게 구대길과 우도하가 파놓은 함정을 뛰어넘어 최서라의 아지트에까지 잠입한다. 최서라의 비밀에 접근한다. 과연 조진갑은 목표한 핸드폰을 찾고 다시 하나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그야말로 갑질의 종합판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도된 모든 갑질이 최서라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압축된다. 현실의 수많은 노동문제 역시 재벌기업의 여러 이슈들과 함께 명성이라는 대기업 하나로 대표된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모순이고 부조리다. 그럼에도 법조차 정작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약자를 철저히 외면하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더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장풍의 활약을 응원하면서 한 편으로 씁쓸해지는 것이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꾸거나 해결할 수 없다. 법보다 위에 있는, 그래서 법을 어기는 것도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들이 바로 권력이며 이 사회의 주류인 것이다. 그런 현실 앞에 법이란, 원칙이란, 상식이란 너무나 무력하다. 그래도 드라마니까. 드라마에서라면 다를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코미디니까. 굳이 진지하거나 심각할 필요 없는 그저 하루의 피로를 풀며 즐기며 볼 수 있는 상업드라마인 것이다. 어차피 현실에는 조진갑도 없고, 덕구같은 인물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최서라와 양태수는 넘치도록 많다. 명성그룹도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그로 인해 피해입고 고통받는 노동자는 드라마와는 비교할 수 없이 처참하고 비참하며 그 수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나마 그들이 기대고 도움을 청할 곳이 바로 조진갑 같은 정부기관이고 공무원들인 것이다. 법이고 제도고 규범인 것이다. 그 사실을 웃음과 통쾌함과 함께 선명하게 보여준다.

 

최서라의 아지트에서 조진갑은 무엇을 찾아내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앞으로 최서라와의 싸움은 다시 어떻게 위태롭게, 그러나 결국에 조진갑의 승리로 끝맺을 것인가. 우도하가 감추고 있는 계획의 정체는 또한 무엇인가. 덕구와 말숙의 가식과 진심을 넘나드는 관계가 또 하나 재미거리다. 너무 높지 않게 너무 깊지 않게 그러나 일상의 눈높이로. 좋은 드라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