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 째 발견된 발목의 절단면에서 얼추 트릭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드라마 '골든타임'에서였을 것이다. 환자의 다리를 절단할 때 봉합을 위해서 절단면에 살을 남겨 자르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세 번 째 공원화장실에서 발견한 피는 친절하게도 장철이 피로 흥건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비닐에 담아 던지는 장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피는 발목에서 나온 것이고, 발목은 살인이 아닌 아직 살아있는 누군가에게서 필요에 의해 잘라낸 것이다. 여기에 항상 백범과 티격태격하던 마도남이 두 번 째 희생자의 사인에 대해 망설이는 장면에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뒤늦게 알고 나니 어쩌면 추리물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는 트릭 가운데 하나였다.
역시나 장철은 살인자가 아니었다. 단지 누군가를 위해 살인을 은폐할 목적으로 그와 같은 일들을 저지른 것이었다. 시신을 훼손하는 것도 범죄다. 수술과정에서 발생한 의료폐기물이라 불리게 된 환자의 신체의 일부를 임의로 빼돌려 사용하는 것 역시 불법이다. 무엇보다 의도된 조작을 통해 수사기관의 오판을 유도하여 사회적인 큰 혼란까지 불러왔다. 더구나 명백히 살인을 은폐할 목적에서 저지른 것이라면 그 또한 큰 죄악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다. 연속살인마와 단순한 살인의 은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니까. 아직 더 크게 쓸 일이 남아있는 것일까. 아마도 장철이 연속살인을 꾸미는데 사용한 시신과 신체의 일부는 장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누구였을까? 누구의 의뢰였을까? 갈대철이 장철에게 걸었던 전화와도 관계가 있을까? 노한신이 갈대철을 찾아가 압박한 것도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또다른 누군가일까? 하필 주요인사들이 사건에 대해 회의하는 자리에서 두 사람이 보인 묘한 표정들이 그런 의심을 더욱 키우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쉬울 리 없다. 이제 겨우 드라마는 시작인데. 이미 백범이 준 힌트를 받아들고 도지한은 첫 번 째 - 아니 실제로는 유일한 살인피해자의 신상을 뒤쫓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납치당했고 어디로 납치되었는지까지 거의 따라갔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백범과 은솔, 도지한 등이 마침내 찬아내고 밝히게 될 진실은 과연 어떤 것일까? 어떤 비밀과 음모와 악의가 그 안에 숨어 있을까?
같은 답도 어떻게 풀이를 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쩌면 흔하고 뻐한 트릭이지만 그를 배치하고 쫓는 방식이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다. 깜빡 속아넘어갈 뻔했다. 그만큼 트릭을 밝히는 과정도 타당하고 합리적이다. 백범이라는 캐릭터와 국과수라는 공간을 십분 활용한다. 국과수가 배경이 아니었다면 느낌은 또 달랐을 것이다. 연속살인에 당황하고 흥분한 수사관들과 냉정하게 시체만을 바라보는 법의관의 입장이 충돌한다. 갈수록 수사검사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오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오로지 법의관은 자신의 눈으로 시체가 남긴 진실만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 대비가 더욱 드라마의 극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의 통쾌함을 더한다. 충분한 단서가 주어졌기에 반전이라 하기도 뭣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공간의 배경이 클라이막스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거짓된 진실을 사실로 여기고 혼란속에 빠져 있던 군중에게 진실이라는 폭탄을 던진다.
정의감이 진실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정의감과 인정으로 만들어진 진실이란 또다른 거짓일 뿐이다. 진실이란 무정한 것이다. 무심한 것이다. 차라리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고 무례할 정도로 단호하다. 그냥 진실은 진실인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 정의일 수 있다. 정의 또한 같으니까. 동료가 징계를 받을 것 같기 때문에. 또다른 살인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어서. 인정은 정의가 아니다. 인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별 일 없이 어울리기 위해서나 필요하 것이다. 진실과 정의란 오롯한 것이다. 정의감은 정의조차 지키지 못한다. 있지도 않은 연속살인에 대비한 회의가 그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도지한은 진짜 살인의 피해자를 쫓아 또다른 진실에 다가간다.
산뜻하다. 그야말로 스릴러의 정석이다. 관객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 일부러 속이거나 농락하려 들지 않는다. 오해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충분한 단서도 던져준다. 한 번 풀어보지 않겠는가. 한 번 답을 찾아보지 않겠는가. 맞든 틀리든 그 답은 납득할 수 있는 너무나 정석적인 합리적인 것이었다. 친절하지만 정교하고 예의바르지만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그래서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게 충분히 배려하면서도 극적 긴장을 높일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캐릭터고 연출이다. 빠져들어 시간마저 잊은 사이 어느새 드라마는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근래 최고가 아닌가 싶다. 뉴스룸마저 포기한 보람이 있다. MBC가 분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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