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미신과의 투쟁이다. 미신이란 믿음이다. 그래서 과학은 의심이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묻고 또 묻는다. 제목이 검법남녀인 이유인지 모르겠다. 믿는 자와 의심하는 자. 확신하는 자와 묻는 자. 그리고 마침내 그를 통해 이르게 되는 진실.
정황이 그리 말한다. 모인 단서들이 그리 판단케 한다. 너무 당연하다.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예 뒷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동안 이처럼 성급한 단정에 의해 결론내려진 수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오히려 그런 당연한 증거들을 의심하여 새삼 다시 사실을 확인하려는 백범이 느리고 답답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치밀함은 부패한 시신의 깨끗한 피부와 가지런히 모아진 손발톱을 통해 다른 가능성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백범의 말처럼 과연 시신의 손발톱은 한 번에 그렇게 모아놓았던 것일까.
선입견에 대한 것이다. 조현병 환자는 어떻다. 조현병 환자니까 어떨 것이다. 가족까지 그리 말한다. 피를 나눈 누이와 친아들마저 그리 말하고 있다. 가족까지 무참히 폭행했었다. 할머니가 죽은 방을 테이프로 막고 있었다. 사실은 아버지의 편을 들고 있는 아들마저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죽은 시신을 며칠째 차에 싣고 돌아다닌 아들이 범인일 것이다. 시신의 몸에 난 칼자국이나 범행에 쓰인 칼에 남은 지문 등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살인이 일어난 현장에도 아들과 피해자 이외에 어떤 흔적도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만하면 너무 확실하지 않은가.
그래서 추리보다는 수사라는 것이다. 원래 추리물이란 어지간해서 두 번 이상 읽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하는 추리의 한계다. 수많은 수사관들이 산을 뒤지고, 강을 헤집고, 법의관들은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시신과 주위를 집요하게 살핀다. 그러고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의심하고 묻고 또다시 의심하고 묻는다. 모르긴 몰라도 추리물에서 탐정이 찾아낸 범인 가운데 정작 재판까지 거치고 나면 무죄로 풀려날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재판까지 모두 마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범죄를 확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사야 말로 창작물에서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이 아닐까. 모든 것을 혼자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어렵게 법을 공부해서 검사까지 단 그래도 엘리트가 수사관들과 함께 산과 강을 발로 뛰며 다니는 모습이 또 얼마나 낭비처럼 보이는가. 법정에서 재판부를 상대로 피의자의 혐의에 대해 피의자의 변호인들과 다투어야 하는 검사가 오히려 피의자를 상대로 직접 수사에 나서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런 느낌마저 받는다. 사실 도지한이나 은솔이 하는 일들 가운데 대부분은 함께 일하는 검찰수사관들이 알아서 독자적으로 처리해도 좋은 것들이었다. 실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히는 것은 경찰들이고 검찰은 단순히 지휘만 하는 것인데 굳이 함께 팔까지 걷어붙여야 할 이유가 있기는 한가. 하지만 신참이면서도 오히려 베테랑 수사관들보다 위에서 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 검사란 직책은 드라마의 소재로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이다. 아마 은솔이 아닌 도지한이 주인공이었다면 드라마는 더 재미없었을지도.
아무튼 과연 조현병 환자인 조한수가 어머니를 살해한 존속살인범이 맞는 것인가? 어머니의 몸에 난 상처와 그의 차에 실려 있던 시신은 그가 저지른 살인의 증거일 것인가? 너무나 상식적인 그 답에 대한 드라마적인 불만이 그 너머의 진실을 찾게 만든다. 백범이 정신차리라며 주먹으로 후려친다. 그렇다면 그런 명백한 증거들 뒤에 숨은 진실이란 어떤 것일까? 더불어 그런 조한수에 대한 신상공개결정과정을 통해 신상공개라는 현실에 대한 질문도 잊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신산공개인가? 고작 언론의 탐욕과 검찰 개인의 야망을 위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의 신상을 대중에 공개한다. 그래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다고 사회적으로 어떤 공적인 이익이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더욱 신상공개까지 맞물려 백범의 부검소견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바로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질문일지 모른다.
부패하고 무능한 검찰에 더해 대중과 사회의 관성까지 진실을 가리는 모든 요소들이 드러난다. 그래서 과학이 필요한 것이다. 상식이라는 이름의 관성에 의한 대중의 믿음을 부수는 칼이고 망치다. 백범의 손에 들린 메스다.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히고 손으로 직접 헤집고 느낀다. 마스크조차 쓰지 않는다. 상징적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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