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닥터 탐정 - 놓아버린 손, 잡지 못한 손, 외면하고 침묵한 결과

까칠부 2019. 7. 18. 13:28

많은 사람들이 그리 말한다. 가만 있으라. 가만 참고 말 잘 들으라. 그저 착하고 그저 성실하게. 그러면 다 된다. 그러면 다 이루어준다. 정규직도 시켜주고, 월급도 올려주고, 편하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러니 덤비지 마라. 그러니 다투지도 마라. 그래서 현실은 어떠한가.


당장 업무상 질병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혹시라도 그나마 계약직 일자리마저 잘리지 않을까 그저 모른 체하라 말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월급이 오르면 내쫓기지 않을까, 해고가 어려워지면 그 전에 잘라내려 하지 않을까, 안전이든 근무조건이든 회사의 수고와 비용이 늘어나면 그 피해가 자기에게 돌아오지는 않을까. 그래서 월급 오르는 것도 싫고, 해고 어렵게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안전이든 환경이든 그냥 이대로였으면 좋겠고. 그래도 이렇게 시키는대로 열심히만 하면 뭐라도 되겠거니. 그러니까 괜한 소리로 자기만 힘들게 만드는 이들이 더 밉고 더 화나기도 한다.


너무 착하고 성실해서. 그저 시키는대로 묵묵히 거스르지 않고 잘 듣고 잘 따르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그다지 동정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결국 이기적인 것이다. 부당한 현실로 인해 겪는 다른 사람의 억울함에 대해 철저히 외면한다. 함께 손잡고 싸우기보다 그저 자기는 아니기만 바라며 더 착하게 더 성실하게 시키는 것들만 따르려 한다. 그래서 상징적인 것이다. 선로에 떨어질 것이 두려워 손잡아주기 바라면서 정작 그 손을 먼저 놓았던 것은 정하랑 자신이었다. 그가 동료의 손 대신 잡으려 했던 것은 몸이 아파 병가를 낸 자신을 다시 불러 위험한 작업으로 내몬 고부장의 손이었다.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사실 그렇게 아낄 수 있는 돈이란 것이 개인은 어떨지 몰라도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리 많은 액수도 아니다. 하긴 용역이란 자체가 그렇다. 직접고용하면 딱 노동자 개인이 받는 만큼의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데 용역을 거치면 용역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비용까지 더해져야 한다. 그나마 고부장은 실제 작업자들을 관리하고 지시하도 하지 그마저도 않으면서 돈만 받아챙기는 임원급이 한가득이란 것이다. 그래서 굳이 정직원으로 고용할 때도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자회사 만들어서 간접고용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회사의 돈을 빼돌려 자신들의 노후대비에 쓰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처우를 바꿔보려 나서는 이들을 향해 이기적이라 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히려 같은 처지일 대부분 대중들이 그런 노동자들을 앞장서서 이기적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워낙 한국사람들이 착해서. 그보다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딱 나 자신만. 내 부모와 내 가족만. 내 주위만.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하기에. 성실하게 바르게 잘 살아야 하기에. 그래서 주위를 외면한다. 그래야지만 위로부터 칭찬도 받고 포상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고부장보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정하랑에게 분노하게 되는 이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바로 그런 행동들이 그런 현실을 방치하게 만든다. 오히려 악화되게 만든다. 노동자를 위해서 임금도 줄여야 하고, 노동시간도 늘려야 하고, 해고도 쉽게 해야 하고, 근로환경에 대한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도 더 쉽게 일자리를 얻고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정규직이 되었다면 더이상 다른 어떤 요구도 해서는 안된다. 정규직 전환시켜주었다고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는 것을 아예 부정하는 것은 어떤 까닭이겠는가.


물론 이해는 한다. 언론은 강성이라 말하지만 한국 노조들 힘이 없다. 진짜 힘이 없다. 김대중부터 노무현까지 아예 뿌리를 말려버려 강성노조를 대표하던 현대중공업 노조마저 말랑말항하게 녹아버린 지 오래다. 노동자의 파업을 손해배상소송이라는 수단으로 철저히 무력화하고 오히려 노조의 경제적 기반을 뿌리뽑아 버렸다. 사법부의 판단이라지만 그에 대한 어떤 입법이나 행정조치를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 정부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민주노총은 같은 편이라 여겨지는 민주당을 그토록 혐오하고 증오하는가. 민주노총이 당해 온 역사를 보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피켓 들고 나와서 구호나 외쳤지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조에 기대서 아무것도 없는 노동자가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노조가 강해서 뭐라도 기대할 것이 있었다면 정하랑 역시 노조에 가입해서 노조의 힘을 빌어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가려 시도했을 것이다.


아직은 도입부라. UDC인지 뭔지 제대로 된 설명이나 묘사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정작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UDC의 활약보다 개별의 에피소드와 그 인물들에 주목하게 된다. 아마 실제의 어느 사건을 모티브로 했을 테지만 감상은 또 그와는 전혀 별개다. 어머니에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조차 솔직할 수 없었던 그 사정이 부당한 현실에 대한 그의 침묵과 외면과 맞물린다. 어차피 그런 일이니까. 그런 대우나 받는 처지일 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당연하지 않겠는가.


가만 있으라. 착하게 성실하게 그저 말 잘 듣고 있으라. 아마 세월호는 이후 한국사회를 근본부터 바꾸는 가장 중요한 계기로 기록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너무나 착하고 너무나 성실한 그래서 너무나 이기적인 올바른 대중들이 너무 많은 탓에. 과연 UDC의 싸움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리 편치만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