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재앙이 들어 있던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란 게 들어 있었던 이유인 것이다. 가장 크고 무겁기에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고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서야 판도라에게 사정해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차라리 희망이라도 없었으면.
돈을 딸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없었다면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요번만 제발, 한 달만, 부디 반 년만, 그러 식으로 가망없는 사업을 살리려다 일가족이 빚쟁이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기도 한다. 혹시나 싶은 기대와 희망이 이내 더 깊은 좌절과 절망으로 바뀌고 끝내 그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해치고 만다. 그나마 아주 짧았던 좋은 기억들로 인해 그 수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그토록 바라던 성공을 맛봤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환호받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도 만났다. 그토록 그리던 아들과 함께 술 한 잔을 나누는 기쁨도 누려 보았다. 그래서 살리고 싶다. 살려서 지금의 기쁨과 행복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다. 설사 그를 위해 자신을 그토록 믿고 따르는 김이경을 희생시켜야 할 지라도.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아예 방법이 없었다면 모를까 할 수 있다면 자신은 악마와도 거래해야 한다. 자신이 악마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때로 서로를 향한 선의가 마치 독기처럼 저주처럼 상대를 옭아매기도 한다. 분명 간절하고 안타까운 순수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온전히 상대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여러 사정이나 이유들에 이끌려 비틀리고 일그러닌 채 주위를 휘말리게 한다. 절대 그럴 의도가 아니었었는데. 원래 그러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었는데. 그러나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자신의 의지는 자신을 자꾸 그리로 몰아가고 만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비겁하고 비루한가. 그런 상황에조차 자기변명에 빠져드는 것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로 자신을 설득하고 납득시킨다. 자신은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었다.
주라인의 영혼이 순백인 이유다. 그런 변명 따위 없다. 그런 비겁한 계산 따위 없다.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굳이 자신을 속이려 들지도 않고 그런 자신에 속아넘어가지도 않는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고 가지고 싶으면 가지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선해 보이는 하립과 김이경의 주변은 얼마나 복잡하기만 한가. 그래서 악마가 깃든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려는 비겁함과 비루함의 틈에 악마가 숨어든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그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악은 선이 되고 정의가 된다. 자신이 악을 행한다는 인식조차 없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계약서를 쥔 손을 뒤로 감추고 만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러는 수밖에 없다. 10년 전 아들을 살리며 곁가지로 떠올렸던 욕망들처럼. 그리고 서로 다른 사정과 이유들과 그를 합리화하는 논리들과 그에 설득되어 버린 자신들처럼. 그래서 과연 하립은 김이경의 영혼을 얻고 아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충렬마저 악마와 영혼을 파는 계약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또 어떤 사정과 사연과 이유들이 있을 것인가. 악마가 사람을 부르는가. 아니면 사람이 악마를 부르는 것인가. 악마가 사랑에 빠지려 한다. 그리고 하립은 마지막 희망을 향해 손을 내민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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