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홉스의 사회계약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치인과 유권자의 관계란 단지 계약관계에 지나지 않음을 대부분 알 것이다. 당연한 것이 지역구 국회의원이 누군지는 아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을 속속들이 아는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 역시 수많은 지역구 유권자 가운데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 알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의 선의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진심이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정치인은 그 위선을 봐야만 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기 위한 그 위선이 얼마나 집요하고 철저한가. 그러므로 그 위선이 얼마나 자신을 위해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인가.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을 내심으로는 혐오하고 경멸하더라도 그들의 표를 받아 당선되기 위해 그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법안과 정책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고 만들어서 실행에 옮긴다. 성소수자와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소스라칠 정도로 끔찍하게 여기는 극단주의자지만 표를 위해서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모든 행동에 스스로 나서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그들을 위해 무언가 실제적인 것들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진심만 있을 뿐 결과적으로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서 당사자에게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겠는가.
정치인은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유권자 역시 그 결과를 보고 투표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유권자는 표를 무기로 정치인에게 그 결과를 위한 약속을 요구하는 것이고, 정치인 역시 진심과 상관없이 그 결과를 위한 약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공약을 넘어서 그것은 정치인의 일상 전반을 강제하는 규약이 된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요구하는 일정한 삶과 행동양식을 보여야만 한다. 그것은 차라리 역할극과도 같다. 국민을 위하는 정치. 시민을 위하는 정치. 그러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정치. 세상에 없는 것들이다. 당연히 그럴 리 없는 것들이다. 진심으로 그럴 것이면 정치가 아닌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 차라리 사회운동 쪽이 비용도 시간도 수고도 훨씬 적게 들어간다. 그만한 비용과 시간과 수고를 들여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의 위선이 까발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유권자가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에 철두철미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위선이 드러나면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만큼 유권자인 자신들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진심을 감추고 유권자를 위한 자신을 철저하게 연기해야 한다. 위대한이 아버지를 저버린 패륜아라는 사실보다 정치인으로서 유권자에게 보일 자신의 모습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패륜아가 아닌 진정한 아버지로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내보이는데 철저하려 한다.
굳이 진심일 필요가 없다. 물론 진심이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다정이 남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머물 집이고 자신들을 지켜줄 보호자다. 보호자로서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누군가일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은 정치인답게 그같은 다정의 요구에 대해 계약한대로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아이들도 어색하고 아버지가 된 자신의 모습도 전혀 낯설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약속을 했기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다정을 불러내어 쑥쓰럽게 묻는 그 모습은 정치인들의 내면이 아닐까.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들도 약속한대로 자신에게 투표해 주었으면.
위대한과 다정의 계약을 보면 정치인과 유권자의 관계가 그대로 투영되는 듯하다. 그래서 방송작가 정수현이 비판적인 태도로 그들의 주위를 맴돌게 된다. 기자가 아닌 것은 아무리 그래도 드라마에 사람이 아닌 것을 출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진심을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욕심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진심어린 관계가 될 수 있기를 믿고 바라고 있을 것이다. 비록 꿈일지라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인인지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너무 불철저했다. 선거기간인데 그 순간 그는 잠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뒤로 미뤄두었어야 했다. 유권자와 약속했으니 자신의 본심과 상관없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보이는 것은 물론 내면까지 철저히 연기해 보일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좋다. 타인의 관계란 그렇다. 보이는 것이 전부고 들리는 것이 전부다. 인간관계란 냉정한 것이다. 정치인 역시.
하필 조국 기자간담회와 겹치는 바람에. 솔직히 드라마보다는 기자간담회가 더 재미있었다. 다시 확인한 것이지만 기자란 것들은 너무 게으르고 무능하다. 뻔히 있는 사실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게나 의혹이라며 내던지고 만다. 그런 기자들이 쓴 기사에 대중은 터무니없이 휘둘린다. 그래서 더욱 대비되는 것이다. 역시 기자는 사람이 아니다. 욕은 살짝 뺀다. 더러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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