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소모재다. 감정이 고조되는 만큼 비례해서 빠르게 고갈된다. 한 마디로 지친다. 내가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피해자의 슬픔이나 아픔보다 형사의 그것이 앞서서야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자기 한풀이부터 한다. 그 과정에서 쓸데없이 고조된 감정들이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들고 끝내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냥 조금만 더 쿨해졌어도 좋았지 않았을까. 지하철경찰대라는 소재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더구나 경찰공무원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바라고 지하철경찰대에서 은거하다시피 근무하고 있는 전직 광수대 엘리트 형사란 것도 뻔하지만 역시 상당히 재미있을 수 있는 설정이었다. 여기에 가족을 찾기 위해 광수대로 들어온 신참경찰이 더해진다. 그러면 이들을 가지고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런데 결국 대부분 분량이 각각 캐릭터들의 개인적인 사연들로 거의 채워지고 만다.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그 비중이 줄어든다.
물론 나쁜 선택은 아니다. 지하철이란 일상의 공간일 테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비일상적인 범죄 사이의 부조화가 드라마의 포인트가 아닐까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넘쳤다. 경찰들 개인의 사연들이 지하철의 일상을 덮어 버렸다. 비일상의 범죄들까지 덮어 버렸다. 이제와서 메뚜기가 나타나봐야 흥미는 급격히 떨어진다. 잡거나 말거나. 처음부터 메뚜기를 잡는 게 그리 중요했던 것도 아니었을 터다. 그냥 내가 드라마를 잘못 보고 있는 탓일까.
너무 우울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낙천과 긍정의 힘이 보이지 않는다. 치이고 짓눌리고 얽매이며 끌려간다. 그렇지 않아도 일상이 피곤하다. 처음 분위기는 괜찮았는데 어째서 갈수록 드라마의 분위기가 쳐져만 가는지. 문근영의 캐릭터가 가진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고지석의 캐릭터가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아니다. 내 취향은 아니란 말이다. 너무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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