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두의 거짓말 - 단 하나의 진실 눈물, 진영민 정영문과 마주하다

까칠부 2019. 12. 1. 09:49

권력이란 공포다. 욕망이란 그 공포에 기생하는 것이다. 잃고 싶지 않다는, 버려지고 싶지 않다는, 그래서 지켜야만 한다는. 혹은 부이고 혹은 지위이고 혹은 명예이며 혹은 애정이다. 그래서 복종해야 한다. 당장의 수모나 굴욕보다 복종이 주는 달콤함이 더 크다. 복종하지 않았을 경우의 공포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럼에도 변명한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고. 남편이 죽임을 당하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을 남편의 명예를 위해서라 말한다. 평생을 모시던 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 명예를 위해 딸마저 죽임을 지시한 이에게 갖다 바친다. 결국은 자신의 두려움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마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 스스로 위로한다.

 

진영민이 정영문 회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 이유였다. 그것은 정영문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토록 정영문을 갈구하며 정영문을 두려워했던 자신에 대해. 그로부터 받았던 것들을 혹시라도 잃을까 두려워하며 안달해 왔던 지난 날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그로 인해 어쩌면 가장 소중했을 누군가를 잃어 버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으로 인해. 진영민이 가장 증오하는 것은 그래서 정영문도 정상훈도 아닌 진영민 자신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정상훈을 납치하고 그토록 잔혹하게 대했던 것도 차라리 자해하는 심정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차라리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자신을 난도질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차라리 더 가지려 했었다. 정상훈을 희생양 삼아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려 했었다.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진정 죽이고 싶었던 것은 누구였는지. 진정 증오했던 것은 누구였었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정영문이란 어떤 의미였었는지. 이런 자신을 만든 사람이고, 이렇게 살도록 만든 사람이다. 차라리 정상훈보다 진영민이 정영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사실상 정신적 부자지간이라 할 수 있었다. 정영문이 그렇게 그를 길렀고, 진영민은 그렇게 정영문에게 길러졌다. 정상훈은 그 사이에 끼인 매개와도 같았다. 진영민이 말한 정상훈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유였다. 그로 인해 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참 신랄한 일갈이다. 아무것도 못했으니까. 무언가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이다. 경영자가 경영을 못해서 회사가 망한다. 지휘관이 지휘를 못해서 군대가 패배한다. 경찰이 수사를 못해서 오히려 무고한 이가 죄인이 된다. 김서희는 알았어야 했다. 남의 일이라고 눈감고 귀닫고 있어서는 안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아버지였다. 사랑하는 남편의 일이었다. 그런데 무심히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 진실을 알았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모든 것이 망가진 뒤였다. 아버지가 죽고 남편이 납치되었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김서희만일까? 그렇게 아무것도 않고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으며 침묵과 무위로써 시간만 보내는 것이 비단 김서희 한 사람 뿐이었을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너무 늦게 너무 많은 것을 잃고서야 김서희는 비로소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그래도 아주 늦기 전에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은 조금이나마 기회란 것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 대가로 잃어야 하는 것들처럼. 그럼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을 위해서. 오히려 더 지독하게 이기적이어야 한다. 부모도 가족의 간절한 외침마저 외면한 채 그저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정상훈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마저 등돌리고 친구마저 외면해야 했었다. 정치인으로서 김서희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정치인이 아니면 다시 시민으로 돌아와야 한다.

 

한 편으로 진영민의 공포는 정영문의 공포이기도 하다. 정영문이 타인을 공포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공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긴 공포가 없는 자는 공포로써 타인을 지배할 수 없다. 조태식에게는 그래서 공포란 것이 없다. 뒤도 좌우도 없이 오로지 앞만 있다. 아무것도 잃지 않겠다. 어느것도 잃지 않겠다. 그런 집착이 그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가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씩 포기하고 잃어가며 그는 모단 것을 지키려 한다. 포도밭의 여우처럼. 나에게 그런 건 처음부터 별 의미가 없었다. 확실히 정영문이 진영민의 아버지가 되었어야 했다. 이렇게나 닮았는데.

 

진실은 드러나고 이제 정상훈의 행방만 남았다. 인동구에 의해 진영민은 피를 흘리고 김서희는 정영문과 자기 주변의 실체를 깨닫는다. 검찰수사를 받으면 더이상 자기에게 덤비지 않을 것이란 정영문의 대사가 인상깊다. 검찰수사란 양심보다도 원한보다도 더 지독하다. 하긴 검찰수사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한둘이 아니니. 진영민이 정영문 앞에 나타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정상훈을 앞에 둔 진영민의 행동은 또한? 끝이 다가와 간다. 인간은 참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