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속으로만 생각해 온 욕망들이 있다.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고 혼자서만 간직해 온 충동들이 있다. 그래서는 안되니까. 모두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자칫 누군가 알게 되기라도 하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은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양심도 공감도 아닌 단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그 욕망과 충동들을 억누르고자 선택하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나는 육동식이 어쩌면 진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사이코패스라고 아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라도 기본적인 지능이 있다면 무엇이 자기에게 유리하고 손해가 되는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오히려 사람의 양심이란 선천적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학습을 통해 배우는 것에 가깝다.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것에 익숙했던 과거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필요하다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의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들은 아예 인간도 아니라고 배워 왔던 제국주의 시절 유럽인들에게 흑인 노예를 죽인 것에 대한 감상을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그것밖에 다른 살아갈 수단이 없는 빈민가 아이들에게 도둑질은 나쁜 짓이라 가르쳐봐야 비웃음만 들을 뿐이다. 반대로 그렇기 필요하다면 부모를 죽인 원수를 보면서도 웃을 수 있고, 딸을 납치한 범인과 마주하고서도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래야만 하는 필요와 당위만 있다면.
그냥 대상이 타인이 아닌 자신일 뿐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에 별반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서지훈의 지시로 자신을 린치하러 온 폭력배들을 상대할 때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손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그 상처를 보면서도 무심할 뿐이었다. 차라리 자신을 위해서는 타인보다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편이 더 이익이다.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을 멸시하고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궁지로 내몰며 마침내는 자신을 죽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분명 육동식도 정상은 아니다. 이건 사람이 선량한 것이 아닌 자신에 무심한 것이다. 그는 과연 좋기만 한 사람일 것인가.
어쨌거나 그렇게 평소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온 육동식에게 마음대로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발산해도 좋은 이유가 생긴다. 그래도 좋다는 허락이 주어진다. 자신은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수도 앖이 많은 사람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해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죽여도 된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일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여기서 시청자 입장에서도 쾌감이 발생한다. 사실은 모두가 그러고 싶었던 일이었다. 어쩌다 상상은 해봤지만 차마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소시민다은 어수룩함과 소심함도 드러낸다. 차마 자기 손에 사람이 죽는 것만은 보고 있지 못하겠다. 사람이 죽는 자체가 싫었던 것일까. 그 이후에 겪을 일들이 싫었던 것일까.
그렇게 자기보다 훨씬 강한 포식자라 할 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시민 주제에 오히려 포식자가 되어 그들을 위협하고 심지어 굴복시키기까지 한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다. 어떻게 소시민 육동식이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저들을 상대로 포식자로서 그들의 위에 설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드라마는 스릴러라는 또 하나의 장르로 들어간다. 실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는 따로 있고, 그런 연쇄살인마를 쫓던 경찰이 이번에는 육동식을 범인으로 오해하고 뛰쫓기 시작한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오히려 경찰보다 먼저 더 강하게 육동식 자신이 자신을 사이코패스 살인마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오해와 우연은 코미디의 필수요소다. 잔혹한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이 소시민 육동식의 일상과 만나며 우연과 오해에 의해 코미디로 바뀌어 간다. 물론 여전히 서인우는 위험한 살인마이고 지금도 여전히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골라 살해하는 포식자 서인우와 그런 약자들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해하는 범인을 쫓는 경찰 사이에서 길잃은 소시민 하나가 방황하며 헤프닝을 만든다. 한 편으로 보는 이의 뒤틀린 욕망을 대리배설하며 시원해지고, 한 편으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동들이 우스꽝스럽다. 연쇄살인마 서인우에 대한 분노를 느낄 새도 없이 그런 소동들에 함께 휘말리고 만다. 그럼에도 육동식이 연쇄살인마란 오해와 착각에 떠밀려 만들어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다. 육동식이 아닌 내가 싸이코패스 살인마가 되고 싶다. 물론 상상에서만. 드라마를 통해서만.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만.
서인우가 육동식을 오해하고, 그래서 그를 초대한 클럽에서 육동식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수첩을 발견한다. 육동식이 자기 것이라 믿고 있는 그 수첩이 다시 서인우와 육동식을 강하게 이어준다. 그 뒤를 다시 경찰 심보경이 쫓는다. 거리가 좁혀지며 서로 얽혀간다. 본격적인 시작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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