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아름다운 강산 - 이선희와 신중현

까칠부 2020. 5. 31. 16:44

 

 

아마 '아름다운 강산'이라 하면 이선희의 리메이크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긴 이후로도 리메이크한다고 하면 거의 이선희의 버전을 레퍼런스로 삼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래도 보컬의 강점을 살리는데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후렴에서 '빰빰빰'하며 브라스 소리를 육성으로 내는 부분은 보컬의 성량과 호흡, 발성을 과시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후렴의 브라스는 사람의 목소리로 내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이선희 버전의 '아름다운 강산'은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다. 일단 곡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의 확장판에 가깝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보다는 대한민국이 있는 한반도와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찬가다. 그래서 활기차다. 희망에 넘친다. 멋지지 않은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고보면 그런 분위기이기는 했었다. 무엇보다 당시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아쉬우나마 민주화도 이루어지고, 그동안의 경제성장 위에 올림픽개최까지 눈앞에 두고 있던 상황이란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고, 거리에는 화려한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만하면 대한민국도 자신감을 가져봐도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원곡이 나올 때 상황은 거의 정반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달랐었다. 막 유신헌법이 통과되고 박정희의 독재가 강화되던 시점이었다. 한창 작곡가로서 주가를 높이던 신중현에게 박정희의 이름으로 정권찬가를 만들라는 주문 아닌 강압이 있었던 뒤였었다. 그래서 사이키델릭한 원곡의 연주는 한강에 나가 소주 댓 병은 마시고 난 듯한 몽환감마저 느끼게 한다. 아 씨발, 그러니까 국가니 정부니 하는 건 몰라도 대한민국이란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은 괜찮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하여튼 이것저것 다 좆같은데 하늘도 파랗고, 강물도 파랗고, 바람도 시원하고, 구름도 푸르고, 사람들은 정겹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러니까 그래도 이땅을 사랑하며 정붙여 살 만한 가치는 있지 않은가. 술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박정희가 이 노래를 초연한 것을 보고 바로 박차고 일어섰다 하던가. 자기 욕하는 걸 알았던 것이다.

 

연주도 연주려니와 그래서 원곡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때문이다. 욕도 쉽게 하고, 생각도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 역설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마음에 안 들고, 그래서 입만 열면 쌍욕을 퍼붓는데, 가만 술에 취해 생각해 보니 그렇게 썩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더라. 더구나 뭣같은 정부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한반도라는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분리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좆같은 놈들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 나라 이 땅 이 사람들이 아름답고 좋지 않은가.

 

그냥 아름다운 강산이라고 이선희만 리메이크하는 영상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되다 보니.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하면 거의 대부분 이선희의 리메이크다. 하긴 원곡의 연주를 리메이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기는 할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손꼽힐 명곡이고 대곡이다. 그래도 보컬만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의 감상이다. 솔직히 술보다는 대마를 빨고 한강에 나간 감상이라 말하고 싶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