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인순이, 박일준, 윤수일 - 음악이라는 해방구

까칠부 2019. 9. 25. 16:46





아주 오래전이다. 한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한 인터뷰에서 윤수일이 그런 말을 했었다. 대중음악계만이 유일하게 혼혈인 자신들을 받아주었다. 어디에도 설 곳이 없던 자신과 같은 혼혈인들이 대중음악을 통해 인정받고 사랑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한다.


그러고보면 벌써 1970년대 말이었을 것이다.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 혼혈이란 말뜻 그대로 다른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튀기라 멸칭으로 부르며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 낳아야 했던 경우도 적지 않은데, 더구나 살색이 다른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그 어머니마저 주위로부터 따돌려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하니 경제적으로도 가난하고, 남들과 다른 살색과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야말로 평범한 보통의 기회조자 제대로 누리지 못했었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혼혈은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 정확히 존재해서는 안되는 국가의 오점이며 사회의 오점이었다. 있어도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나았다. 그런데 유독 대중음악계만은 그런 당시의 현실과 너무 달랐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전쟁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이루는 곳이 바로 미군을 대상으로 한 8군 무대였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아무것도 없던 시절 달러를 벌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실력있는 예술인들이 미군무대로 몰려들었었다. 이미 본토에서 수준높은 문화를 누리던 미군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어지간히 실력있는 연주자가 아니면 아예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미군 무대에서 음악인들은 새로운 음악을 접하고 그 음악들을 체화하며 60년대 이후 한국대중음악을 성장시키는 주역이 되고 있었다. 그냥 한 마디로 당시 이름 좀 날렸다 하면 미군 무대에 한 번 쯤 올랐었다 보면 된다. 70년대 말 데뷔한 심수봉 역시 대학 시절 미군무대에서 드럼을 쳤었을 정도면 그 영향은 80년대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볼 수 있다. 아니 바로 97년 부활로 데뷔한 박완규도 무명시절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미군무대에서 매일 보는 것이 까맣고 하얀 미국인들이었을 것이다. 미군 무대에서 연주하고 부르던 음악들도 미국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이었다. 당연히 미군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외모의 혼혈에 대해 한국인들처럼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 한국인 음악인들만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실력만 있으면 된다. 실력이 되어 미군들을 만족시키고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만들 수 있으면 문제가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군무대에 익숙한 대중음악인들이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면서 그 영향은 이어진다. 어쨌거나 실력만 있으면 피부색은 상관없다. 부모의 국적이 어디이든 상관없다. 연극도 영화도 드라마도 코미디도 아닌 대중음악계에서는 그래서 혼혈에 대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순이도 대중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박일준은 사실 잘 모른다. 가장 오랜 기억 속에서도 박일준은 히트곡이 뭔지도 모르는 그냥 유명한 가수일 뿐이었다. 인순이는 이제는 거의 희미한 기억속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가수로 기억되고 있다. 윤수일이야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윤수일이 MBC PD를 폭행한 사건에 대해서는 역시 이 문제가 걸린 것은 아니었을까. 대중음악계가 그나마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었다는 것이지 당시 혼혈에 대한 차별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도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따돌림과 괴롭힘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당시는 어땠을까?


그냥 저번 빌리지 피플과 마이클 잭슨에 대해 쓰다가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나마 윤수일 이후로 윤미래 말고 딱히 떠오르는 혼혈 연예인의 이름이 없다시피 하다. 그마저도 상대적으로 더 차별받는 흑인 혼혈은 더욱 희귀하다. 오히려 외국 국적의 아이돌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의 국적이 다른 경우를 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물론 모든 차별이 사라진 잃어버린 낙원 같은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런 가능성이 한국 사회 한쪽 구석에 그렇게 잠시 자리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면 역사적으로 대부분 한국인들도 수많은 혼혈의 결과들인 것이다. 한국인의 주류가 바이칼호에서 만주를 통해 남하할 때 이미 한반도에는 선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을 정복하고 밀어낸 결과 지금 한국인의 주류가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던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남부를 거쳐서 한반도에 도착한 이들도 있었다.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이주민들은 족보만 뒤져바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화산 이씨는 베트남의 왕족이었고, 김해 허씨의 시조인 수로왕후 허황옥은 인도에서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안 명씨는 원명교체기의 군웅 명옥진의 후손이고, 양산 진씨는 진우량의 후손이다. 그냥 당시는 생김새가 서로 비슷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피 좀 섞였다고 난리칠 이유같은 건 없는 것이다.


이제는 드라마에 일본인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전혀 이상치 않고, 아이돌 가운데 중국인이나 태국 출신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한 편으로 낙관하고 있기도 하다. 당시 대중음악계에서 유독 혼혈들에 대해 관대했던 것처럼 익숙해지는 가운데 어느새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그냥 든 생각이다. 음악이 미국에서 흑인을 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도록 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 기억났다. 2000년대 초반 한 연예인이 혼혈로서 당해야 했던 차별을 고백했다가 큰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한국사회에 혼혈에 대한 차별은 없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아닌가? 한국사회는 어떤 차별도 없는 완벽한 사회다. 그래도 조금은 성장해 있기를. 실제 성장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