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고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약하고 불완전하다. 오류투성이에 그런 잘못들을 인정하기 싫어 거짓말에만 익숙하다. 그런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아이들은 살아가는 것이다.
권기웅이 잡히는 과정은 그래서 매우 상징적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오니 권기웅이지만 결국 오토바이를 몰면서도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길 위만을 달려야 했던 것이다. 어른들이 길을 막고 가지 말라 하면 다른 길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경찰에 잡힌 뒤에도 그래서 권기웅은 어른이 만든 촉법소년이라는 법에 기대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잘못은 누구의 잘못이다? 바로 어른들의 잘못이다.
인간은 누구나 악하다. 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선할 수 있는 이유는 선한 개인이 더 환영받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리 악해도 다른 사람은 선하기를 바란다. 자기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선한 행동만을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권기웅은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다. 친구들이 모두 자기 길을 찾아 어른의 세계에 속한 지금도 그저 아이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이미 물들어버린 자신의 악에 기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한 인간의 세계란, 선한 어른의 세계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악해져도, 그래서 얼마든지 죄를 저질러도 자신은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진정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는 단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었다.
한 편으로 서로의 처지가 엇갈린다. 촉법소년이라는 자체를 어린 권기웅과 박재민에게 가르쳐 준 것은 어른인 박재민의 변호사였었다. 그러나 박재민에게는 아버지가 있었다.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어른으로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까지 알아서 만들어주는 존재가 뒤에 있었다. 권기웅은 아니었다. 박재민은 그렇게 더렵혀졌지만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권기웅은 끝까지 아이로만 남았다. 할머니도 돌아가고 더이상 그에게 어른으로서의 삶을 가르쳐 줄 존재가 주위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편하게 어른들로부터 배운 방식대로 아이들과 어울리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을 가르쳤던 어른들처럼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이 배운 악을 가르치면서.
아버지의 죄로 인해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속에 살아야 했던 두 형제들과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어느새 범죄자로 몰리고 여론의 단죄까지 받아야 했던 이가은의 처지가 그래서 오버랩된다. 진실을 밝히려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려는 그 욕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도 단지 아이들이 나빠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심지어 사이코패스들조차 어느새 세상으로부터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범죄와는 상관없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는 것이다. 누가 아이들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가? 그럼에도 그런 아이들의 죄마저 응징하는 것이 어른들이 만든 법이란 것이다. 더 큰 죄와 악을 막기 위해서.
권기웅이 슬퍼 보였던 이유다. 악이란 원래 슬픈 것이다. 차라리 죄는 그냥 나쁘다. 하지만 악이란 거슬러 가면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원래 악했을까? 원래 악했어도 그 악을 드러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권기웅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된 아이들도 원래 악해서 죄를 짓고 말았던 것일까?
아마 그래서 작가도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권기웅의 죄가 밝혀지는 장면을 그렇게 무리하게 구성한 것이지 않을까. 악해서가 아니다. 단지 약해서다. 자신의 양심과 선의를 지킬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 인간이 슬픈 이유다.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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