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고전 창작물에서 술집 작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까칠부 2021. 1. 18. 07:45

무협소설 초창기 작가 가운데 천재로 손꼽히는 인물로 서효원이 있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이 들려준 일화가 있었다. 작가들끼리 모여서 술먹는데 술값이 모자르자 서효원이 혼자 방하나 잡고서 소설을 쓰더니 출판사 편집장을 부르더라는 것이었다. 그걸로 그날 작가들 술값은 모두 해결되었다. 

 

요즘이야 술집에 여자가 있다면 룸살롱을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아니었다. 내가 살던 동네만 해도 룸살롱 급은 아닌데 여자들이 나와서 호객하던 술집이 아예 떼로 모여 있었다. 그걸 부르는 전문용어가 있었는데 그런 것까지 내가 알 주제는 되지 못한다. 다만 글쟁이의 문화인 양 작가들이 그런 술집에 모여 오만 대화를 나누며 취해 지낸 이야기들은 들어 알고 있다. 그러면 그런 작가들이 보고 듣는 이야기라는 게 어떤 것이겠는가.

 

오래전 영화 '삼포 가는 길'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이 영화만이 아니다. 당시의 많은 영화들에서, 혹은 소설들에서 술집에서 남성들을 상대하는 이른바 작부라 불리던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 하는 대사나 행동들이 너무나 리얼하다. 작가가 직접 취재해서 묘사한 것이었을까?

 

시대가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술마시러 간다는 것은 여자 끼고 논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술자리에는 여자가 있고 여자가 있으면 술이 있다. 성매매란 단지 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요즘도 노래방에서 도우미라 불리는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는 모양이다만.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필 소설 원작에서도 백화가 작부 출신으로 묘사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인호의 소설 고래사냥에서도 춘자가 작부로 묘사되고 있었다. 아니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아예 작부다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오히려 성매매여성의 지위가 더 높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 여자 끼고 술마시는 문화가 성행하던 사회에서 이른바 작부라 불리던 접대부들은 어느새 대중문화의 주역으로까지 등장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아주 은밀한 고급업소가 아니고서는 들켰다가는 큰 일 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은밀하게 숨어들고 밝혀지면 큰 사회적 이슈로 번져간다. 심지어 당시 그런 술집 거리는 주택가 바로 인근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싸움 깨나 하는 건달놈이 그쪽 동네는 부담스럽다며 가기를 꺼렸었다. 그래도 사회는, 인간은 발전하는 것인가. 괜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