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구마사를 썼다면 먼저 구마활동 도중 조선으로 표류한 선교사부터 설정했을 것이다. 더불어 선교사가 구마를 통해 봉인한 악령도 같이 조선으로 표류해 왔다는 식으로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차피 조선에도 무당이나 도사 승려 유학자들이 있어 기존의 귀신이나 요괴들은 충분히 퇴치할 수 있으니 유럽의 악령들이 표류해 온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유럽 선교사에게서 가톨릭 신앙을 배우고 구마법을 배운 백성이 무당과 승려와 도사들과 때로 경쟁하고 때로 협력하면서 악령들을 퇴치한다. 조선을 굳이 부정하지 않고서도 조선에서 구마사의 존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선구마사의 설정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내가 오래전 첫회만 보고 접었던 어느 인터넷 소설이었다. 조선의 선왕들이 죽어서 저승에 갔다가 조선의 미래를 보고서는 문종을 찾아가 경고를 하는데 그 첫마디가 유럽과 무역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가 15세기 초반이다. 15세기면 아직 유럽문명의 수준이 그리 대단치 못하던 시절이다. 유럽문명이 다른 문명을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앞서 잡아도 18세기 이후부터인 것이다. 문종 때도 유럽과 무역만 할 수 있으면 조선은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근대화되어 부강해질 수 있다. 유럽사대주의다.
퇴마조차도 조선의 무당이나 도사 승려들은 필요없고 유럽의 선교사들만이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다. 이매망량을 마음대로 부리던 유학자들조차 의미없이 가톨릭 신부들을 데려와야지만 악령들을 퇴치할 수 있다. 세종대의 놀라운 과학발전 역시 구마사들의 영향이다. 참고로 세종대면 아직 수학이나 과학에서 이슬람의 영향이 유럽의 그것보다 강하던 무렵이다. 역시나 너무나 새롭고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신인작가의 본능이 불러온 참극이었다는 것이다. 섣부른 역사의식이 빚어낸 소란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 그냥 무능했던 것이다. 너무 일이 커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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