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남들과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할만한 자기만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런 독창적인 무언가가 대중과 너무 멀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동안 리뷰를 하면서 일상성과 특수성이라는 용어로 정리해 쓰고 있었다. 대중에 익숙하면서도 대중에 신선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데 그 균형을 잃으면 이번과 같은 사단이 벌어지고 만다.
월병? 그럴 수 있다 본다. 기생집 인테리어가 중국풍이다? 돈 많은 놈들이 중국식 좋아해서 그랬었나 보지. 술상에 피자가 올라갔으면 신부를 꼬드기겠다고 일부러 이탈리아 요리를 아는 사람 불러서 재현한 것이라 눙칠 수 있다. 물론 피자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마 18세기? 19세기? 그러나 판타지 아는가. 문제는 그 설정이다. 조선에도 무당이 있고 승려가 있고 도사가 있고 유학자가 있는데 무슨 신부인가? 신부의 구마란 무당의 접신이나 승려의 불심과 같이 신앙에 근거하는 것이다. 신앙 없이 구마도 없다. 그래서 유학자도 귀신을 부리고 퇴치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다. 그런데 왜 하필 구마사였을까?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는 시작된 것이다.
태생적으로 이 드라마는 조선에 비하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조선에 있는 것을 멀리 외부에서 구해야 하는 설정에서부터 조선에 비하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니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까지 구해야 한다. 우연히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와서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조선의 왕족이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서양은 우월하다. 유럽은 우월하다. 기독교는 우월하다. 그런 분위기 위에 월병이 등장했으니 사람들이 난리가 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안다. 이 드라마는 조선을 업수이여기고 있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때가 있고 일상을 일상으로 여기고 누려야 하는 때가 있다. 조선이 배경이라면 조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겠으니 조선구마사 같은 끔찍한 혼종이 나오고 마는 것이다. 조선에 대한 부정 위에 서구에 대한 환상을 더한다. 중국은 그저 거들 뿐이다. 제작진 변명처럼 의주에서 그런 술집이 아주 없었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과정이 우스울 뿐. 그게 문제인 것이다. 시작이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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