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밥이 되어라 - 앤 셜리를 보는 듯, 바로 성인으로!

까칠부 2021. 1. 25. 05:20

생각보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빨리 끝났다. 몇 주는 더 할 줄 알았다.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했었다. 특히 영인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빨간머리 앤'을 많이 떠올렸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아닌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이다. 수선스럽고 과잉된 감정들이 딱 만화영화 속의 빨간머리 앤이었다. 다정이나 오복의 캐릭터도 그렇고, 결국 이후를 생각하면 정훈과 오복은 길버트를 둘로 나눠 놓은 것이 아닐까.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영인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를 주인공으로 '빨간머리 앤'을 번안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사실 그렇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길게 끌어갈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지치기도 했었다. 지루하다. 그래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매력적이기는 했었다. 어느새 공중파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인정 넘치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그리움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고급 한정식집 '궁궐'의 내부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매번 나올 때마다 집중을 흐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꼭 이걸 봐야 하는가? 하지만 시놉시스를 보니 결국 모든 이야기는 이 '궁궐'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몰라도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길게 이어진 것은 아닐까.

 

캐릭터들이 전형적이면서 매력이 있다. 어딘가 본 듯한 익숙한 캐릭터와 설정과 구성들이 그러나 친숙함과 함께 편안함으로 손쉽게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그려내는 것도 어지간한 내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칫 유치해질 수 있고 지겨워질 수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 뻔히 보이는 감정과 이야기들을 그렇다고 일부러 숨기는 법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 일일드라마였구나. 미니시리즈와 일일드라마는 미덕이 다르다. 내가 일일드라마를 잘 안 보는 이유기도 하다.

 

시작은 괜찮았다. 등장인물들의 여러 뒷사정들을 디테일하면서 정감넘치게 잘 묘사해 보여주고 있었다. 성인으로의 전환 역시 매우 자연스러웠다. 조금 길다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끊으면서 바로 10대시절을 넘기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간다. 필요한 이야기들은 다 보여주었으니 이제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오복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의대에 진학하겠다던 정훈은? 그리고 영신과 다정은? 경수총각은? 사실 리뷰 쓰기가 영 쉽지만 않은 것이 바로 일일드라마다. 특별한 이야기보다 일상의 보편성이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항상 새로운 이야기여야 한다. 기대하며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