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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 장르와 클리셰의 관계, 일부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

까칠부 2021. 2. 10. 19:58

오래전 어느 무협소설작가로부터 동시대 다른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이 오래전 고인이 된 서효원과 사마들에 대한 비교였는데, 서효원은 소설의 마지막을 먼저 구상하고 나머지를 채워넣는다면 사마달은 작품을 써나가는 동안 마지막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서효원은 철저히 계산해서 쓰고 사마달은 임기응변으로 쓴다는 것인데, 그래서 나온 말이 사마달은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주인공을 주루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주루에만 가면 뭔가 사건이 생기고 이야기가 풀린다.

 

사실 이건 사마달만의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 대부분 무협소설들이 뭔가 이야깃거리가 막히면 일단 주루부터 가서 사건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굳이 작가를 열거할 필요도 없이 대부분 무협소설 작가들이 그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연히 주루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혹은 밤늦게 바람을 쐬다가 어떤 침입자를 만나 쫓아가고, 그나마 요즘은 절벽에서 떨어져서 수 백 년 전 절대고수의 무공을 얻는 기연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모르겠다. 최근 무협소설은 안 본 지가 제법 되어서. 그런데도 팔리는 이유는 무언가? 그게 바로 무협이기 때문이다.

 

달마역근경이란 무공은 현실에 없다. 달마역근경이라는 무공서는 있는데 사실은 아들 낳게 해준다는 도인체조에 제목만 그리 붙인 것이다. 심지어 달마역근경이란 말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도 청대 이후다. 하지만 소림사에서 최강의 무공은 달마역근경이어야 한다. 심지어 달마가 만들었다는 달마삼검의 초식이름까지 거의 동일하다. 천산에는 마교가 있고, 남직례여야 할 안휘에는 남궁세가가 있고, 감히 무엄하게도 황제의 직할령인 북직례의 하북에 팽가가 자리하고 있다. 제갈량이 와룡강을 떠난 게 벌써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호북에는 제갈세가가 남아 있다. 그래서 뭐?

 

오래전 어느 판타지소설가가 소드마스터니 그랜드마스터니 하는 당시의 설정들을 무시하고 소설을 쓰다가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들었었다. 검사는 소드익스퍼트부터 시작해서 어느 단계부터 마스터며 그랜드마스터로 바뀌고 그 경지의 특징인 어떻고 등등등등... 한 편으로 그런 것을 바라기도 한다. 드디어 허접하던 주인공이 익스퍼트가 되고 마스터가 되었구나 강해진 것을 한 눈에 느낄 수 있게 된다. 로도스도전기만 하더라도 주인공 판이 강해진 것은 거의 티가 나이 않다가 아슈람과 무승부를 기록하고 나서야 강해졌구나 알게 된다. 그에 비해 오러니 검강이니 하는 건 얼마나 알기 쉬운가. 현경이니 생사경이니 하는 표현들도 그래서 등장한다.

 

아마 순수소설을, 아니 장르소설이라도 뭔가 격조 있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치하고 한심하기만 한 설정놀음일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왜 거기서 주루에 들어가느냐고. 왜 하필 주인공이 들어간 주루에 개방의 전대장로가 있고, 싸가지없는 세가의 자제들이 있고, 정체를 감춘 절대의 고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것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밤늦게 숙소를 나와 정원을 거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실망부터 하게 된다. 스릴러에서 주인공 근처에 괜히 쓸데없이 비중만 높은 인물이 있으면 그놈부터 의심하게 되는 것과 같다. 작품성의 문제가 아닌 장르라고 하는 독자와의 약속인 것이다. 굳이 구구한 설명같은 것 필요 없이 엘프는 엘프고 드워프는 드워프고 파이어볼은 마법이고 리커버리는 회복마법이다. 왜? 그래야 하니까.

 

2092년이라는 설정은 악역인 설리반을 위한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라는 지옥을 거치며 인간에 대한 증오를 뿌리깊게 간직한 인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몇 년이라도 좋다. 실제로 얼마나 가능할지와 상관없이 그저 우주에는 우주정거장이 있고, 우주식민지도 있고, 그래서 우주선을 타고 마음껏 누비는 활극의 무대가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중력을 어떻게 제어하는가? 그런 게 왜 필요한데? 더 자세한 설명 없이도 스페이스 오페라의 팬이라면 설리반이 왜 그따위로 행동하는지 그냥 바로 보고 이해하게 된다. 그딴 식으로 미친 놈들이 만화에만 걷어차일 정도로 나온다. 사회의 하층을 전전하는 무법자 캐릭터는 이미 스타워즈의 한솔로로 너무 익숙하다. 미래의 계급사회라는 것도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그래서 뭐? 그런 게 바로 스페이스 오페라다.

 

클리셰 덩어리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스타워즈가 에피소드4 하나만으로도 완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이전의 수많은 장르의 클리셰를 충실하게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배경은 우주였지만 시대적으로는 아득한 과거였고 서사구조는 기존의 신화나 영웅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타워즈 에피소드4의 성공이 있고서야 비로소 이후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설정들을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조차 역시 이전의 수많은 작품들로부터 빚진 결과들이었다. 새로운 설정이나 내러티브는 그만큼 많은 수고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작품의 상당부분을 할애해가며 일일이 설정에 대해 설명할 것인가. 그냥 대충 알아듣고 넘어갈 만큼 기존의 설정들에 빚을 지고 끝낼 것인가. 통속소설에서 기존의 패턴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만한 시간을 대중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클리셰란 때로 장르를 존재케 하는 토대이고 기둥이다.

 

그러면 그런 요소들을 어떻게 멋드러지게 잘 버무려서 보기좋게 만들어내는가. 그것을 스타일이라 부른다. 연출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포장기술이다. 같은 장르적 요소들을 가지고서 어떻게 잘 배치해서 그럴싸하게 보기 좋고 재미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익숙한데 새롭다. 새롭다기보다 손에 착 감긴다. 공산품에 가깝다. 정확히 공예품이다. 똑같은 대바구니지만 누가 만들든 비슷해 보이면서도 그러나 정작 쓰임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면 승리호는 잘 만든 스페이스 오페라인가? 스페이스 오페라의 원래 목적을 떠올려보라. 로망스다. 활극이다. 충분하지 않은가?

 

승리호 승무원들의 바보짓과 액션만으로도 영화는 모든 가치를 다 한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에 청소부들이 동원된 우주전투장면이 보여준 박력만으로 제 가치는 모두 증명한 셈이다. 내러티브는 그런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주제조차도 전혀 새롭지 않다. 서부극의 주제가 거의 일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도 거의 대부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트로트를 듣는 사람들은 트로트를 트로트이게 하는 코드에 집착하는 것이다. 오히려 편했다. 탁월하지는 않지만 영리하다. 쓸모있고 가치있는 오락영화를 만들어냈다. 충분하지 않은가. 좋은 작품이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