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수많은 성현들이 한결같이 죄악으로 여기며 경계했던 것들이 바로 무지와 나태와 탐욕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는 결국 하나를 가리킨다. 당장의 편리와 안락과 만족에 길들여지며 더이상의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운 진실을 알기를 포기하게 된다. 유럽의 중세를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다. 기독교라는 답을 찾은 유럽의 지성들은 더 이상의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을 포기하게 되었다. 오로지 신의 뜻만이 세상을 밝힐 유일한 진실이며 진리다. 하긴 동아시아는 수 천 년 넘게 공자가 남긴 말씀에 대한 답안지를 만들고 그것을 외우느라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공자나 석가나 예수가 그런 것을 바라고 그 거대한 가르침을 인류에게 남긴 것이 아니었다.
과연 기자들이 묻는다고 자신들부터 사건의 당사자일 텐데 진실을 말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일까? 검찰청 취조실도 아니고 법원 앞 공개된 장소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기자들이 몰려와 떠드는데 과연 기업의 대표고 잘나가는 변호사쯤 되는 인간들이 기자들이 원하는데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줄 것이라 여기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하긴 기자들이 바라는 것은 사실도 당연히 진실도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사실을, 진실을 알고자 했다면 법원 앞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기보다 직접 발로 뛰어 현장을 찾고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법원 앞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이란 당사자들이 어떤 주장을 하고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정도다. 그러니까 진짜 악의를 가진 이들이 언론을 자기 손발처럼 마음대로 움직이고 언론 역시 그런 의도에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일 터다.
대기업과 대형로펌과 검찰과 법원과 언론과 그리고 시민단체라는 이 사회의 진정한 악의 카르텔을 보여준다. 악의를 가져서만 악이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언론 가운데 진짜 악의를 가지고 기업의 편에서 기사를 쓰는 곳은 한 곳 정도만 특정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나머지 언론들은 무언가? 무엇보다 과연 검찰이나 사법부가 특정 기업이나 단체, 개인들을 봐주기 위해 그따위로 수사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인가. 그냥 지레 선을 그어 버리는 것이다. 더이상 피곤해지기 싫어서. 불편해지기 싫어서. 귀찮고 힘든 일들이 생기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래서 눈감고 귀막고 입닫고 그냥 순리대로 따라간다. 그러니까 빈센조와 홍차영은 악당인 것이다. 법원에 나타나는 모습부터 딱 악당의 그것이었다. 초고가의 스포츠카를 타고 선글라스까지 낀 채 아주 불량한 자세로 차에서 내린다. 차라리 법무법인 우상의 등장이 훨씬 더 모범적이다.
정상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이 사회의 법이나 정의, 상식 같은 것만을 믿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피해자들도 감히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기를 포기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판을 뒤엎어 버리자. 언론도 재판부도 믿지 않기에 차라리 규범 밖의 파격을 선택한다. 아마도 이 사회에 존재하는 거악의 존재를 가장 잘 적나라하게 드러낸 드라마가 아닐까. 기득권 가운데 정의는 없고, 세상의 정의를 지켜야 할 이들조차 모두 타락했거나 아니면 무지하고 게으르다. 깨어난 이들은 무력하고, 힘을 가진 이들은 사악하다. 그러면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힘을 가지려면 사악해져야 한다. 빈센조가 등장한 이유다.
어째서 중국의 민초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납치해서 살해하는 흉악한 산적들의 이야기에 그렇게 열광했던 것일까. 사람을 죽여 그 고기를 회쳐먹는 이야기에 오히려 통쾌함마저 느낀다. 무림보다 앞선 것이 바로 녹림이었다는 것이다. 더이상 살 길을 잃은 사람들이 끝내 도망쳐서 의지하는 곳이 산속의 도적집단이었다는 것이다. 나무로 이루어진 숲만이 아닌 사람으로 이루어진 숲에서도 도적들은 숨어 활동하고 있었다. 휘황하게 빛나는 법과 정의와 윤리와 가치로 무장한 드러난 도적들과 그늘진 곳에 죄와 악으로 얼룩진 숨은 도적들이 싸운다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드라마는 그보다 조금 더 명확하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선을 분명히 그어둔다.
무엇보다 드라마를 끌고 가는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다. 그냥 잘생기고 예쁜 정도를 넘어 드라마를 통해 보여지는 캐릭터가 너무나 개성적이고 매력이 넘친다. 전직 마피아로서 악을 그늘처럼 드리운 이방인 빈센조부터, 너무나 익숙하게 똘기를 보여주는 홍차영까지, 더구나 반대편에서 최명희 역시 나쁜 년이라는 욕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을 만큼 확신에 찬 악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저런 위험하고 무서운 놈들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구나. 그에 비하면 바벨의 숨은 실세 장준우나 현회장 장한서는 많이 그 존재감이 약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 주로 대부분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최명희만 이길 수 있으면 바벨 쯤이야.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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