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말이다. 문명인들은 예의없는 말을 해도 머리가 쪼개질 걱정이 없기 때문에 야만인보다 더 무례하다. 코난시리즈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실제 그런 대사가 있었는가는 기억하지 못한다. 워낙 오래전에 읽은 터라. 하지만 인정한다. 저들이 저토록 막나갈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자기들만이 막나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아무리 막나가도 상대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자기들이 만들 것이니까.
강자가 강자인 이유는 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도 윤리도 법도 가치도 정의도 진리도 모든 것을 자기들이 정할 수 있다. 정의가 정의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들이 멋대로 정하고 강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의를 주장하는 이들을 악으로 타락한 부정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권변호사 홍유찬의 평생을 더럽힌 그 방식 그대로. 무슨 대단한 방법을 동원한 것도 아니다. 그냥 하던대로 경찰을 통해 수사케 하고, 그 내용을 언론을 통해 흘리면 되는 것이다. 사실인가의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허구가 사실이 되고 거짓이 진실로 뒤바뀐다. 그런 저들을 상대로 과연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갈수록 더 허무맹랑해지는 무협소설이 여전히 대중들 사이에서 소비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못하지만 무협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럴 수 있다. 하늘을 날고 물위를 달리며 산마저 허무는 절대의 무림고수들이라면 세상에 자기들만 있는 양 막나가는 저놈들의 머리통도 아무렇지 않게 쪼개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내용이 황당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이 주는 공포가 대단하기에 그 이상의 힘을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 십만 대군을 뚫고서 침략군의 황제를 때려죽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 만의 병력이 지키고 있는 곳을 홀로 뚫고 들어가 부정한 권력자를 단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지만 저들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막나가는 것은 자신들만이 아니다.
물론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초인적인 능력 같은 것은 이상적으로 그리 필요치 않을 지 모른다. 투표만 제대로 해서 위정자만 잘 뽑아 놓으면 국민의 뜻에 따라 저들도 얼마든지 단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 무서운 것 모르던 검찰이 수사권을 모두 내놓을 지경에 내몰리고,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던 대기업 총수들마저 여론을 의식해 몸을 사리게 된다. 아무 생각없이 기득권의 이익만을 대변하던 언론에게도 책임을 물을 방법이 생겨난다. 언론이 멋대로 왜곡해 보도한 내용들에 대해 최소한 사후에라도 보상받을 방법이 생겨난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언론의 자유가 언론을 움직일 수 있는 기득권의 이익으로 돌아가게 된 지가 벌써 오래다. 언론에 의해 여론이 휘둘리면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마저 왜곡되기 쉽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막나가는 저들 만큼이나 막나가며 저 못된 머리를 쪼개 버릴 또다른 야만인의 존재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문명사회에서 야만을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오로지 육체의 힘만으로 법도 도덕도 윤리도 상관없이 본능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야만인의 존재를 동경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무협소설의 주인공들도 결국 법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고 무시하는 범죄자들이란 것이다. 차라리 법을 우습게 여기는 범죄자들이 법을 만드는 현실의 권력보다 더 정의롭다. 그래봐야 조직폭력배에 지나지 않는 김두한이 영웅으로 떠받들려지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범죄조직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도 해내지 못한 속시원한 정의를 실천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물론 허술하다. 그래서 판타지다. 무협이란 판타지다. 하지만 덕분에 세상에 자기들만 존재하는 양 악을 저지르던 이들에게 톡톡히 되갚아주게 된다. 청부를 받고 실제 사람을 죽인 범인이 보복으로 살해당하고, 청부한 전직 검사는 코인빨래방에서 두려움에 떨고, 사람 목숨을 우습게 여기던 대기업은 그 원료창고가 통째로 불타 사라진다. 법으로 불가능한 법 외의 존재이기에 가능한 쾌거인 것이다. 법이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니까. 법이란 그저 힘있는 이들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바벨제약의 원료창고가 폭발할 때 느낀 짜릿한 전율이야 말로 빈센조가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점이 현실의 영웅으로서 최소한의 가이드가 된다.
법을 우습게 여기는 놈들에게 역시나 법에 기대지 않고 화끈한 보복으로 돌려준다. 법을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놈들에게 법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확실하게 되돌려준다. 법 말고 자신들에게도 막나갈 수 있는 수단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법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약자들이 진정 기대야 하는 것은 법이란 공공의 규범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빈센조와 같은 이레귤러의 존재에만 기댈 수는 없다. 그를 위한 전제다. 우리들도 막나갈 수 있다.
한 번 쯤 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약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다 부숴 버리면 더이상 저들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눈치보지 않고 막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면 저들은 더이상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법부마저 어느새 기득권에 포섭되어 버린 지금 과연 이대로 법만 믿고 손놓고 있어도 괜찮을 것인가. 속시원하면서도 씁쓸한 이유인 것이다. 홍유찬보다 홍차영과 빈센조가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드라마는 통쾌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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