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까지 한국인에게, 아니 아시아인에게 고음이란 불가능의 영역이라 생각했었다. '불후의 명곡'에서 현미가 요즘 가수들은 하이가 너무 쉽게 올라간다 말한 배경이다. 한국인은 고음이 불가능하다. 한국인에게는 유럽인이나 흑인과 같은 고음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 때 등장한 것이 일본의 라우드니스였다.
일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성대를 좁히고 비강의 도움을 받으면 한국인도 고음을 낼 수 있다. 가만 80년대 고음보컬들을 떠올려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성대를 좁히고 콧소리를 섞어 억지로 고음을 쥐어짜냈다. 물론 그 대가는 성대다. 그런데 그런 이론을 거부하는 인물이 처음부터 존재했었다. 임재범이다.
임재범의 고음은 다른 보컬들과 달랐다. 성대를 열고 곡압으로 고음을 밀어낸다. 이른바 흉성이란 것이다. 흉성이란 정확히 복강내 압력을 열린 성대를 통해 밀어올리는 발성이다. 성대를 좁히는 기존의 이론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 소울과 알앤비의 발성법이 유행하면서 임재범의 발성법은 한국 가요에서 정석으로 여겨지게 된다. 참고로 김경호의 두성 역시 흉성의 연장에 있다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지금 일본 가요계에서 여전히 유행중인 발성법은 이전 한국 가요계에서 고음을 내기 위해 지나왔던 지난 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가끔 일본 음악을 들으며 느끼게 되는 촌스러움은 그런 영향이다.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말 그대로 청출어람이랄까. 일본이 나름대로 찾아낸 고음발성법을 넘어 우리만의 발성법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 시작이 벌써 80년대부터 있어 왔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만. 임재범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혹시 탑밴드 시즌2를 다시 볼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어째서 신대철은 프리다칼로의 보컬에 그리 감동받았던 것일까? 그런데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거든.
벌써 10년 전 위대한탄생에서 김태원이 90년대의 칼라라 불리는 목소리가 여전히 일본의 대중음악에서는 통용되고 있다. 오랜만에 일본 애니를 보고 있으려니 주제음악이 귀에 거슬리는 이유다. 거북이와 토끼의 우화를 보는 듯하다. 한참 앞서 있었기에 머물러 있는 사이 한국 음악은 일본을 아득히 추월했다.
90년대까지 일본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경외감따위 이제 전혀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이제 느끼는 감상은 오래전 지나온 시절에 대한 추억에 가깝다. 가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음악들은 전혀 새로운 느낌을 전하지 못한다. 일본음악을 들어 온 세대인 때문이다. 마츠다 세이코나 나카모리 아키나가 익숙한 세대다. 시절은 이렇게 흘러왔다. 지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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