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표절과 자기복제, 작가와 작풍에 대해

까칠부 2022. 8. 14. 18:32

어디선가 오래된 악보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제껏 한 번도 연주된 적 없는 악보는 악보는 과연 누가 쓴 것일까?

 

물론 아무런 단서 없이 그저 악보 하나만으로 작곡가를 찾는다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몇 가지 단서만 있다면. 이를테면 발견된 장소라든가, 함께 발견된 물건이라든가, 소장하고 있던 사람의 내력이라든가, 그리고 대충 작곡가가 특정되면 그때부터는 진짜 그 작곡가의 작품인지, 언제쯤 쓰여진 작품인지 판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미술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인데 어떻게 전문가들은 그것이 진짜 작가의 작품이고 언제쯤 만들어진 것인지 근사치로나마 맞출 수 있는 것일까? 마치 지문처럼 지울 수 없는 작가의 흔적이 작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풍, 필체, 필치, 뭐 이름이야 당연하다.

 

오래전 신대철이 시나위를 해체하고 세션을 뛰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날 연주를 마치고 술을 마시는데 어디서 익숙한 기타소리가 들리더라. 누가 쳤는지 모르겠는데 너무나 연주가 익숙해서 찾아보니 자기가 연주한 것이더라. 그래서 그 길로 세션 때려치고 다시 시나위를 만들게 되었다 했었다. 자기가 했는지도 모르는 연주를 단지 돈만 받고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하긴 나 역시 내가 썼는지도 모르는 글을 내가 썼다는 사실을 그냥 글을 보는 것만으로 알아차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워낙 많은 글을 썼다. 그동안 인터넷을 하면서 최소 만 단위는 넘게 글을 썼을 것이다. 짧은 글보다 긴 글이 더 많았다. 그 수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 분야도 다양해서 언제 어떤 내용의 글을 썼는지 기억한다는 자체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인지도 모르고 어딘가 떠도는 글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래도 티가 난다. 나 뿐만 아니라 실제 내 글 만 보고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쓰고 있는데 찾아와서 아는 체를 하는 사람도 제법 되었었다. 그러면 음악이나 미술은 어떠할까?

 

예술에서 영감이란 하나의 주제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발전시켜가는 과정인 것이다. 문득 하나의 터치가 떠올랐다. 색과 그 조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화폭에 옮긴다고 그것으로 완성인가? 매번 다르다. 같은 영감에 기반해서 같은 주제로 같은 작품을 그리는데도 사람이기에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림은 더 정교해지고 더 능숙해진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원래의 주제에서 벗어나 작가의 다른 의도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렇게 한 시절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작가의 작품을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생겨난다.

 

어떤 멜로디를 썼다. 어떤 코드와 리듬과 비트를 써서 음악을 만들었다. 곡의 구성을 이렇게 해 보았다. 연주의 편성을 이렇게 새롭게 시도해 보았다. 혹은 누군가를 모방해서 흉내내 봤다. 너무 멋지다. 마음에 든다. 그래서 다시 시도해본다. 더 멋지게, 더 아름답게, 더 완성도있게. 비슷하지만 더 아름다운 멜로디를, 더 흥겨운 리듬을, 더 정교하고 촘촘한 코드를, 그리고 그를 살릴 수 있는 더 멋지고 짜임새있는 구성과 편곡을. 그 시절 그것은 그가 가장 구현하고 싶은 가장 훌륭하다 생각하는 음악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단지 자기 복제라고, 자기표절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무지는 야만이다. 무지에 기반한 정의는 야만의 투사에 지나지 않는다. 일정 시기 특정한 작가가 쓴 곡이 비슷하다. 멜로디와 구성과 스타일이 상당히 유사하다. 스스로도 말한 바 있었다. 그런 음악을 가장 아름답다 멋지다 훌륭하다 여긴다고. 그래서 그런 음악을 쓰는 것이다. 같은 앨범 안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을 하면서 그러나 정작 타이틀곡으로 내세우는 것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들이다. 자기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음악들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들을 한다. 이번에는 멜로디를 이렇게, 연주를 이렇게, 곡의 구성을 이렇게, 편곡을 이렇게... 그런데도 그 유사성을 두고 말한다. 당신은 표절작곡가다.

 

그래서 유희열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인지 모른다. 한 작곡가에게 너무 많은 다양한 음악들을 요구한다. 예술가의 영감이란 항상 특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밖의 것들까지 자꾸 요구하게 된다. 한 작곡가가 댄스곡과 알앤비와 록과 트로트와 일렉트로니카를 모두 소화한다는게 과연 현실적으로 타당한 일인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특정한 장르의 특성을 살려서 대중이 좋아하게 만드는 정도야 전문적으로 배웠고 재능만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그 이상을 요구할 경우다. 특정한 작곡가가 자신의 영감을 바탕으로 생산해낸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음악을 한 결과물과 대등할 것을 요구한다. 가능할 리 없다. 가능한 경우는 그 부족한 영감을 훔쳐왔을 경우다.

 

모든 것을 잘하는 천재는 오히려 매우 드물다. 천재가 천재인 이유는 한두가지를 남들보다 더 잘하기 때문인 것이다. 모든 것을 잘한다면 오히려 평범하기 쉽다. 단지 기술적으로 더 능숙하게 해낼 수는 있다. 너는 한가지만 잘한다. 잘하는 한 가지만 하려 한다. 그러니 자기복제다. 표절이다. 그러면 어쩌라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이 또한 그래서 스타작곡가라 불리는가? 유희열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무지가 가장 위험하다. 끔찍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