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일본식 이세계물과 레퍼런스의 차이, 익숙하고 재미있는 이유

까칠부 2021. 6. 6. 22:50

당연한 말이지만 창작에도 무에서 유는 없다. 한 사회의 문화수준은 따라서 그 사회가 그동안 생산한 성과의 연장에 비례하여 결정된다. 세익스피어와 괴테가 위대한 이유다. 호메로스나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작가들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백과 두보 이전에 조조와 조식이 있었고, 이후로는 소식과 구양수가 있었다. 루쉰 없이 중국의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쓰메 소세키, 에도가와 란포, 다자이 오사무, 이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같은 위대한 문호들이 있었기에 일본은 경제력에 어울리는 문화수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우습게 보았을 것이다. 이세계물은 한국에서도 이미 한 물 지난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 하도 이세계로 넘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 그마저 지겨워지며 이세계로 가는 고딩들을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이고깽이란 말이 유행하던 것이 도대체 언제적인가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제서야 겨우 트럭에 치이느라 정신없는 일본의 라이트노벨이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그런데 예전 양판소를 열심히 읽었던 덕분에 시기적으로 늦은 것과 상관없이 그 수준을 우습게만 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 이게 바로 레퍼런스의 힘이로구나.

 

한국의 아이돌음악이 원조라 할 수 있는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명멸한 결과인 것이다.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다. 대중적으로 성공하여 스타가 된 아이돌그룹도 있었고 대중의 외면을 받아 이름도 없이 사라진 아이돌그룹 역시 무수히 많았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된다. 어떤 음악을 어떤 식으로, 안무는 어떻게, 의상은 어떻게, 멤버들의 캐릭터는 어떤 방향으로 설정해야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가. 한국의 밴드음악이 미국이나 영국, 심지어 일본의 발밑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김태원이 말했다. 일본의 음악인들은 이전 세대의 뛰어난 연주자, 작곡가들에 대해 무수히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이 없다. 마치 어제오늘 처음 시작한 양 지금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전부다. 저 멀리 엘비스 프레슬리에, 더 후, 롤링스톤즈, 비틀스, 레드제플린, 핑크플로이드, 섹스피스톨즈 등 수많은 전설적인 밴드들과 그들과 세대를 겹치며 활동했던 이전의 선배들을 직접 보고 들으며 성장한 이들이 만드는 음악의 수준이란 그저 음반으로만 비디오로만 들으며 성장한 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의 밴드음악을 수입하기도 급급한데 그 위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기란 기존의 기반 자체가 너무 허술하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밴드음악은 그냥 대충 연주만 들어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그 특징이 확연해진다. 역시 레퍼런스다. 무엇에 기반하여 무엇을 참고하며 무엇으로부터 생산되었는가.

 

일본 이세계물을 보면서 더욱 느끼는 것이다. 최근 빠져서 읽은 것은 '오버로드'였었다. D&D류의 TRPG 룰에 대해 해박한 것을 넘어 그 플레이까지 일상화되었을 정도로 익숙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D&D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룰과 플레이를 철저히 자기화하고 있었다. 읽으면서 내내 작가와 그 친구들은 얼마나 TRPG를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는가를 상상하게 되었다. 같은 먼치킨이더라도 그 전투의 묘사에서 각 마법이나 스킬의 사용이 매우 실감나게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먼치킨들은 차라리 무협소설의 그것을 차용하여 싸우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우열의 문제는 아니다. 어째서 한국의 이세계물은 무협의 그것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쓰게 되었는가. 판타지보다 무협이 더 가까운 한국의 환경에서 판타지조차 무협이 되어 버린다면 일찍부터 서구의 판타지를 받아들이며 TRPG라는 룰과 플레이를 체화한 일본의 그것은 그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일본이 생산해 온 수많은 판타지소설과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게임들, 그리고 그 전에 일찍부터 일본이 받아들여 체화해 온 서구의 판타지문화가 쌓이고 쌓이며 이제 라이트노벨을 통해 새로운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위저드리를 받아들여 드래곤퀘스트와 파이날판타지같은 일본식 롤플레잉의 레퍼런스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그런 성과들 위에 이세계라는 유행을 받아들여 새로운 성과들을 낳는다. 판타지라는 한 가지 장르만 놓고 봤을 때 일본의 그것이 한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우월하게 여겨지는 이유인 것이다. 장르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서로 놓인 환경의 차이로 너무 다르다.

 

대부분의 설정은 원래 한국의 판타지란 일본의 판타지를 수입해서 변형한 것이기에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당장 한국 판타지의 엘프부터 '로도스도전기'의 디드리트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라면 그 묘사에 있다. 얼마나 판타지를 판타지스럽게 묘사하는가. 판타지조차 무협이 되어 버리는 한국과 어느새 판타지 그 자체를 느끼게 만드는 일본의 차이랄까. 물론 모든 판타지 작품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일본도 쓰레기는 쓰레기다. 한국 판타지도 좋은 건 좋다. 다만 일반적인 경향성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일본의 레퍼런스에 익숙한 나에게는 지금 일본에서 생산된 창작물들이 더 익숙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솔직히 불만이 많았었다. 이게 과연 판타지인가. 물론 판타지다. 그런데 세계가 너무 허술하다. 그 허술함을 주인공의 강함으로 어거지로 채워 넣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하긴 한 권 나오는데 한국은 한 달, 길어야 두 달, 일본은 1년 이상까지 걸리는 경우마저 있다. 그러고도 한국은 빌려보는데 일본은 거의 사서 본다. 그런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일본 문화에 익숙해 있는 탓이기도 할 것이고.

 

정확히 라이트노벨보다는 그를 원전으로 한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애니메이션 한 편 보려고 죽어라 돈 모아서 남대문 지하상가를 찾아야 했었는데 지금은 시절이 참 좋아졌다. 다만 이세계물이나 일본식 판타지라는 레퍼런스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꽤나 난감할지도 모르겠다. 장르란 그래서 체험이고 이해인 것이다. 논리나 상식이 아닌 자발적 동의에 의한 내면화다.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좀비가 그런 식으로 발생하고 창궐하고 인간을 위협하게 되는 이유와 같다. 장르란 그래서 또 하나의 세계다. 할 일도 많은데 참 번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