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카치 위스키는 보리로 만든다!

까칠부 2024. 3. 2. 20:52

이런저런 재료들로 술을 만들다가 보리로도 한 번 술을 만들어 보았다. 그런데 생보리를 그대로 개량누룩과 효모로 발효시킨 때문인지 술이 너무 시어서 못먹을 물건이 나오고 말았다. 이걸 그냥 버려야 하나... 하지만 어려서부터 먹는 걸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터라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냥 설탕 넣어서 도수를 높인 다음에 바로 증류해 버리자. 그래서 보리로 만든 술을 증류해서 병입한 것이 벌써 지난달 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두었다가 바로 어제 뚜껑을 열고 맛을 보았다. 그런데 이건...?

 

꽤나 알싸하게 치고 들어오는 알콜 특유의 매운맛이 아주 익숙했다. 어디서 먹어봤을까? 한 모금 씩 마시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안주는 당연하게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에 만두를 넣어 끓인 순대만두국. 그렇게 거의 1리터짜리 병 절반을 비웠을 때 쯤 기억이 떠올랐다. 스카치 위스키에서 오크향을 빼면 딱 이 맛이 난다. 스카치 위스키의 맛과 향이라는 게 거의가 오크통에서 나온 것일 텐데 어떻게 분리가 가능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된다. 물론 제대로 숙성을 거치지 않았기에 오래 숙성한 고급 위스키보다는 만 원 언저리에 팔리는 싸구려의 그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후회했다. 아, 이거 그냥 오크칩 사다가 향을 더했으면 진짜 위스키 맛이 났을 텐데.

 

참고로 도수는 위스키보다 더 높다. 물을 타지 않은 원주이기 때문이다. 대략 50도에서 60도 사이 어디쯤인 것 같다. 그냥 마시는 건 무리라서 탄산수 잔뜩 넣고 하이볼로 먹었다. 상온에 두었다가 적당량만 넣어 섞으니 단 맛이 강한 게 알콜도 튀지 않고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다시 또 보리로 술을 만들어 증류해 볼까 새삼 욕심이 생긴다. 이번에는 증류하자마자 오크칩 넣어서 위스키 비스무리하게 만들어 보면 재미있겠다. 더불어 옥수수 제철이 되면 그것 사다가 버번을 만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버번에 쓰이는 옥수수는 일반적으로 사서 먹는 것과 품종이 다르지 않을까?

 

아무튼 스카치 위스키는 역시 보리로 만든다는 평범한 사실만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보리로 만들어 증류하면 어쨌거나 위스키 비슷하게 나오는구나. 쌀로 만든 술을 증류하면 또 저 맛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위스키 좋아하는 인간들이 절대 얼음 넣어 먹지 말라 한 이유도 알 것 같다. 보드카는 차게 얼려서 먹어야 제맛인데 보리 증류주는 상온에 두고 먹어야 향과 맛이 더 부드러워지고 좋아진다. 이틀만에 1리터짜리 만들어 놓은 걸 거의 다 먹어 버리는 바람에 남은 것이 없어 더 아쉽다. 내일은 포도주로 만든 브랜디를 먹어봐야겠다. 향은 아주 달던데. 술만드는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