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고구마로 술 만드는 것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쪄서 으깬 다음에 물을 붓는데 그냥 물에 삶으면 되지 않을까? 더구나 보아하니 고구마의 풍미를 더욱 살리려 아예 고구마를 찐 물을 더해 술을 만들고 있으니 기왕이면 찌는 것보다 삶는 게 더 낫겠다. 그래서 5킬로에 1만원 하는 못난이 밤고구마를 샀다. 그냥 한 번 어떻게 되나 만들어보려 산 것이라 품종보다는 가격만 보고 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술 만드는데 밤고구마라니... ㅠㅠ
아무튼 못난이라기에는 너무 상태가 좋은 고구마들을 배송받아서 하나하나 깨끗이 씻으며 칼로 불필요한 부분들을 정리해 주었다. 일단 꼭지 쪽을 잘라내고, 변질된 부분도 도려내고, 다만 껍질을 벗기는 것까지는 너무 손이 많이 가서 패쓰. 어차피 고구마로 술 만들 때 굳이 껍질까지 벗기지는 않더라. 다만 껍질이 있는 상태로 술을 발효시키면 메탄올이 생길 가능성이 높으니 증류할 때만 조심하면 된다. 그렇게 하나하나 깔끔하게 다듬어서 냄비에 실리콘 찜틀을 깔고 그 위에 차곡차곡 올려 놓은 뒤 물을 부어 한참을 끓인다. 냄비가 작아서 위아래로 뒤섞어 끓이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게 대충 다 물러진 것 같아서 불을 끄고 발효통에 넣어 으깨주니 술만드는 작업은 그것으로 끝이다.
밑술은 따로 하지 않고 기존에 발효중이던 막걸리 통에서 지게미까지 잔뜩 국자로 퍼다가 으깬 고구마 위로 부어 주었다. 어차피 발효중인 막걸리이니 알콜도수도 꽤 될 테고, 쌀막걸리라 쌀의 잔당도 남아 있을 테고, 무엇보다 누룩과 효모가 이미 활성화된 상태다. 그러고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 추가로 누룩과 효모를 넣어주고 뒤섞은 뒤 뚜겅을 덮고 내버려두었다. 다만 확실히 섬유소가 많다 보니 서로 뒤엉킨 채 발효통 안에서 위로 떠올라 마르는 것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하루에 한 차례씩 뒤집어준다. 그러고 났더니 집안에 냄새가...
고구마가 알콜로 발효되는 냄새를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뭔가 달착하고 구수하고 시큼한 것이 어쨌거나 꽤 괜찮다. 저어 주려 발효통 뚜껑을 열어보면 그 냄새를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맛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냄새 만큼은 성공이다. 이대로 발효 다 마친 뒤 증류해서 내리면 고구마소주가 되는 것일까? 술 만드는 것을 취미로 삼으면서 가졌던 목표 가운데 하나다. 고구마소주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것인데 아무튼 과정이 괜찮다.
어차피 고구마를 찌고 나서 고구마 냄새 물씬 나는 그 물을 그냥 버리기가 아깝더라는 어느 양조장 사장님의 말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일일이 찌고 으깨고, 더구나 하필 밤고구마라 그 난이도까지 생각하니 더 수월하게 만들 방법을 찾게 되었다. 다만 껍질 정도는 제거해야 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나중에 진짜 아무일 않고 집에서 놀고만 있으면 한 번 생각해 보려고. 지금은 딱 이정도까지. 내가 업자도 아니고 쉽게 만들 수 있으면 그러는 게 낫다.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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