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맥주에 반드시 홉을 넣어야 하는 이유? 보리로 술만든 실패담

까칠부 2024. 11. 12. 21:17

보리로 술을 만들어 보려 많은 시도를 해 봤었다. 당연히 맥주는 아니다. 결국은 청주와 막걸리였는데, 어차피 맑은 술 떠내면 청주고 지게미 섞어서 거르면 막걸리니까 그냥 퉁쳐서 막걸리를 만들려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다 보니 결론이 나왔다. 아, 이래서 맥주에 그루트나 홉 같은 걸 넣는구나.

 

그러고보면 이상하기는 했었다. 맥주라는 자체가 맥아에서 생성되는 효소를 이용해서 곡식을 당화하고 그를 효모로 발효시켜 만드는 술이었다. 만드는 방법 자체가 너무 쉽고 단순해서 그냥 맥아로만 발효시켜 먹어도 될 텐데 왜 굳이 다른 부재료들을 넣는 것이 아예 필수처럼 되어 버렸는가. 당장 맥주순수령부터 보리와 물과 효모에 더해 홉까지 넣을 것을 강제하고 있지 않았는가. 홉이 들어가지 않으면 맥주가 아니다. 그런데 막걸리는 그냥 쌀에 물에 누룩만 넣어도 막걸리인데? 거기서 맑은 술만 거르면 청주이고?

 

그런데 보리로 술을 만들어 보니 알겠다. 이건 옥수수도 같다. 일본에서 굳이 쌀을 극한까지 도정해서 선별한 곰팡이만으로 당화시켜서 맑은 술을 만들려 노력한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곡식에 다른 성분이 많으면 술이 시어진다. 하긴 단백질이 분해되면 아미노산이 되는데 그것도 결국은 산이긴 하다. 순수하게 곡식에 포함된 전분만 당화시켜 발효하면 바로 깨끗한 알콜이 나오는데 그 밖에 단백질이니 지방이니 섬유소니 각종 무기원소니 들어가기 시작하면 더구나 발효과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면 그 결과물이 꽤나 곤란한 지경이었을 것이다.

 

물론 처음 보리로 술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어차피 술이란 그런 것이구나 여길 수 있었을 테니 크게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보리로 술을 만들 때 아마도 소아시아에서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맥주가 아닌 포도주가 술 그 자체를 대표하듯 쓰이고 있었을 정도였다. 사실 포도주도 발효를 마치고 바로 마시면 쓰고 떫고 영 그냥 마실 것이 못되기는 한다. 포도향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당분은 죄다 효모가 먹고서 똥을 싸놨을 테니 단맛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맥주는 이보다 더 심하다. 나는 이거 발효를 잘못해서 상했는 줄 알았는데 정작 증류를 해 보니 쫄쫄쫄 술이 꽤 제대로 나온다. 이래서 그리스 로마에서는 맥주를 잘 안 즐겼구나. 너무 맛없으니까.

 

그런데 역시 술을 만들려면 맥주가 비용이 더 적게 든다. 포도주는 한 철이다. 포도 수확철에 만들어서 상하기 전에 마셔야 한다. 지금도 포도로 증류주를 만드는 동네에서는 포도수확철에만 잠깐 증류기 돌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냥 놀려둔다. 반면 보리야 한 번에 수확해서 잘 말려 놓으면 아무때든 술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 다만 너무 맛이 없다. 그러니까 그 맛을 가리기 위해서 다른 부재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역마다 자기들만의 맥주에 넣어 마시는 향료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지금까지 남은 것이 홉인 것이고.

 

아무튼 보리도 그렇고 옥수수도 그렇고 진짜 대충 발효하고 단맛 남았을 때 먹으려 해도 그게 영 고역일 때가 많다. 내가 술을 잘못 만드는 것인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 술만드는 게 어려워서야 아무나 대충 손쉽게 만들어 먹기가 곤란하지 않겠는가. 막걸리는 진짜 아무나 만들어 먹어도 최소한의 맛은 나온다. 물론 막걸리도 조금만 잘못하면 아주 시어지기는 한다. 그렇더라도. 

 

보리만으로 만든 술과 쌀을 섞어 만든 술의 맛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일 것이다. 처음 쌀과 보리를 섞어 술을 만들었을 때는 그리 구수하고 맛도 좋더만 보리만으로 술을 만드니까 진짜 못먹을 술이 나오고 만다. 하긴 그래서 유럽에서도 밀맥주를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실제 밀맥주는 보리만으로 만든 맥주에 비해 단맛이 강한 편이다. 억측일 수는 있지만. 아무튼 보리와 옥수수만으로 만든 술은 맛이 없다. 증류해야 그나마 먹을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