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짜장면은 만들어 먹어야 하는 이유

까칠부 2024. 11. 3. 23:55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근처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낡은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물론 자주는 가서 먹지 못했다. 그때 짜장면이라는 게 특히 아이들에게는 그리 흔히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방 창문 너머로 열심히 면을 치던 주방장의 모습을.

 

원래 짜장이란 재료를 기름에 볶은 뒤 전분과 물을 넣어 끓여서 만드는 것이었다. 이때 전분과 물을 빼고 바로 기름에 볶아 내오는 것이 바로 간짜장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간짜장의 '간'을 맛이 짜서 간짜장이라 부르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간짜장을 대량으로 만들어 걸죽해지도록 물과 전분을 더하면 그게 짜장이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무리 짜장이라도 그래서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제대로 양배추나 양파, 감자, 고기 같은 것들이 씹히고는 했었다.

 

그렇다 보니 가끔 중국집 주방장이 사장과 싸우기라도 하면 태업한다고 저런 재료들을 썰지도 않고 대충 넣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짜장면을 시켰더니 통감자와 통양파가 그대로 들어있어 배달한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 소리를 하더라. 그만큼 당시 짜장면은 그래도 씹는 맛이 있는 음식이었다. 고기든, 끓여내기는 했어도 기름에 볶아서 아직은 씹히는 맛이 있던 다른 채소든. 참고로 망하기 직전인 중국집에 가서 짬뽕 시켰더니 해산물은 들여놓은 게 별로 없어서 야채만으로 만들었다며 바로 만들어 내오는데 내 인생에 가장 맛있는 짬뽕이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다른 재료라고는 거의 없이 양배추와 양파, 당근 같은 채소들만 볶아서 오징어 몇 조각 넣어 내왔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의 식감과 단맛이 진짜 최고였었다. 그런데도 맛없다고 망했었으면 짬뽕 먹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일까. 대량으로 만들지 않고 그때그때 볶아서 내오는 짬뽕은 다른 차원의 요리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짜장면 먹고 싶으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이유일 것이다. 채소를 기름에 볶아서 씹히는 맛을 느끼고 싶은 것이었다. 그보다는 갈아넣어 형체도 알아 볼 수 없는 고기보다는 그래도 덩어리째 씹히는 고기를 먹고 싶은 것도 있다. 더불어 기름이 많은 고기 부위를 쓰면 돼지 비계에서 기름을 내서 짜장면의 풍미를 더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집에서 만들면 간짜장이 되기는 하는데, 원래 짜장은 간짜장이 근본이니까. 그런데 볶은 짜장이라는 게 또 눈에 보이네?

 

평소 만들던대로 볶은 짜장 사서 짜장면 만들었더니 그냥 짜장면이다. 굳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전분이나 물 따로 안 넣고 볶은 짜장만 넣어서 고기랑 채소를 볶아 만들었더니만 그냥 옛날에 먹던 그 짜장면 맛이 나는 것이다. 아, 이래서 내가 최근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지 않았구나. 일단 고기를 갈아넣기 시작하면서 짜장면은 내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짜장에 들어 있는 채소들이 아예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리는 시점에서 짜장면은 그다지 매력적인 음식이 되지 않게 되었던 것이고. 아마도 이런 게 채소의 익힘 정도라는 거겠지. 그런데 집에서 볶은 짜장 가지고 대충 만들었더니 어려서 먹었던 그 맛 비슷하게 나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편으로 이해하는 것이 짜장면은 박정희 정권 이후로 정부에 의해 가장 심하게 가격을 통제받은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재료값이 올라도 짜장면 값은 마음대로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음식값이 다 오를 때 혼자서만 가장 늦게 천천히 올랐었다. 짜장면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갈수록 열화되는 것도 그래서인 것이다. 더 이상 짜장면을 예전처럼 공들여 만들 이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간짜장이 나오게 되었고, 쟁반짜장이 나왔고, 하지만 이들조차 어느새 기존의 짜장으로 수렴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중국집 주방장의 위상이 이전 같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예전에는 중국집에서 주방장이 갑이었다. 주방장 솜씨에 중국집 매출이 움직이고는 했었다. 그래서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사장보다 주방장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런데 IMF를 거치면서 중국집 주방장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그냥 월급쟁이 직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프랜차이즈가 늘어난 것도 한 몫 했다. 사람들이 더 싼 음식을 찾는 경향 또한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주방장들이 굳이 짜장면에까지 솜씨를 부릴 여지가 사라졌다. 솜씨를 부리려면 더 남는 요리에 솜씨를 부리는 게 낫다. 탕수육도 군만두도 파는 것을 사다 튀겨서 내는 상황에 무슨?

 

그러고보니 내가 쓰고 있는 볶은 짜장 역시 사실 어느 유튜브 보고 구입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짜장도 춘장을 사다가 볶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볶아져 나온 것을 그냥 부어 만드는 것이다. 아예 채소며 재료들을 볶지도 않고 바로 넣어 끓여 만드는 곳도 있을 정도다. 그런 짜장면이 맛이 있을 리 있나. 그래도 되는 것은 짜장 자체가 워낙 맛이 강한 재료니까. 된장찌개가 어지간해서 맛이 없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된장 역시 된장 자체가 맛이 없지 않으면 어지간해서 실패하기 힘든 재료다. 그래서 이연복 같은 이들이 짜장면은 어렵다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반드시 시간이 흐른다고 모든 것이 더 좋아지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내가 아는 중국음식들이 그랬다. 그놈의 찍먹이 유행하면서 탕수육도 부어먹던 시절보다 소스가 많이 부실해졌다. 튀긴 고기 위에 부어 소스의 채소들과 같이 곁들여 먹는 음식이었는데, 찍어 먹으려 하다 보니 굳이 채소까지 넣어 만들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분명 어렸을 적에는 귤이며 파인애플이며 사과며 과일도 많이 들어갔던 것 같은데. 늙은이 하소연이다. 예전이 좋았었다. 문득 떠오른 상념이다. 짜장면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맛있다. 불맛이 없어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