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느꼈다. 황교익이 옳았다. 아니 이전에 만화가 허영만도 자신의 만화 '식객'에서 다룬 바 있을 것이다. 소들이 곡물로 만든 사료를 먹게 되면서 소고기 특유의 맛과 향이 많이 사라졌다.
아주 오래전 내가 육회를 좋아했을 때는 그냥 대충 생고기를 잘라 입안에 넣으면 바로 화악 소고기 특유의 육향과 고소하고 달콤한 고기맛이 콧속까지 폭발하듯 번져갔었다. 그래서 오래전 김병조도 어느 집에서 국을 끓이면서 소고기 몇 점 만 넣으면 바로 온동네가 다 알더라는 어릴 적 경험을 방송에서 이야기한 바 있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고기 특유의 누린내라고도 느낄 수 있는 그런 맛과 향일 것이다.
유럽의 귀족들이 다 자란 소보다 어린 송아지를 즐겨 먹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소가 다 자라면 일단 고기가 질기다. 그리고 맛도 향도 강하다. 그래서 그렇게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가릴 수 있는 향신료를 찾아 헤맨 것이기도 하다. 양고기만 냄새가 난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또 그 냄새가 없어서 아무 맛도 냄새도 없는 고기는 심심해서 못 먹기도 한다. 고기 자체의 맛과 향에 향신료의 맛과 향이 더해지면 오히려 그것이 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고기 먹으면서 후추를 안 뿌리게 된 지도 꽤 되었다. 그다지 후추가 고기를 먹는데 그다지 매력적인 조미료로 여겨지지 않는다.
얼마전 오랜만에 육회를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예전 육회를 좋아했던 것을 기억하고 굳이 육회를 먹자고 끌고 들어간 건데, 나는 그냥 이 놈이 육회를 좋아하는구나 여겨서 따라들어가 맛만 보려 했었다. 그리고 몇 점 집어먹고서 떠올리고 말았다. 아, 이래서 내가 육회를 더이상 먹지 않게 되었구나. 그냥 식감밖에 없다. 마늘장, 기름장, 뭐 다양하게 찍어 먹는데 그 마늘의 향까지 누르려 들던 그 강한 고기향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쇠고기 생고기 특유의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고기를 씹어 먹는구나. 마늘장은 그냥 마늘장 맛으로 먹게 되더라. 정확히 육사시미랑 육회다. 내가 예전 쇠고기로 요리를 하면서 생고기 씹어먹던 걸 기억하는 탓이다. 내가 생고기를 좋아한다. 오래전 이야기다. 진짜 안먹은 지가... 음... 음...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일단 비싸기도 하고.
갈비탕도 지금 먹으면 그냥 소금맛이랑 후추맛만 난다. 내 기준이다. 그러고보니 오래전에 갈비탕 먹을 때 굳이 고기만 발라서 소금에 찍어먹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그 자체만으로 맛과 향이 충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기에 익숙해졌다기에는 내가 쇠고기 안 먹기 시작한 것이 거의 그 정도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으면 차라리 돼지고기를 먹지 쇠고기는 먹어도 뭔 맛인지 모르겠어서 안 먹은지 꽤 되었다. 그래서 식객에서도 성찬이 쇠죽을 쑤어 먹인 한우를 찾아서 그리 전국을 돌아다녔던 것일 게다. 사료만 먹인 소에서는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소도 그렇지만 다른 동물들 역시 무엇을 먹는가에 따라 고기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연어의 붉은 빛도, 복어의 독도, 돼지의 누린내도 주로 먹는 먹이에 의해 결정되는 특징들인 것이다. 그래서 먹이를 제한해서 공급하는 양식에서는 연어살이 희어질수도, 복어에 독이 없을 수도, 돼지에게서도 누린내가 없을 수도 있다. 소는 풀이다. 정확히 그 풀의 섬유소를 대신 소화시키는 위장내 박테리아들이다. 이 박테리아들이 다시 소의 위장에서 소화되어 근육을 이루는 단백질이 된다. 그런디 그런 단백질들마저 모두 사료를 통해 공급한다. 그러니 맛도 향도 달라질 수밖에.
쓸데없이 이런데는 예민해서. 한 번 맛있는 걸 먹으면 그만 못한 걸 못먹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냉면을 좋아하는데 잘 사먹지 못한다. 설렁탕도 어지간해서는 주문하지 않는 메뉴이기도 하다. 적당히 좋아하면 적당히 넘어가는데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게 안 된다. 안타깝게도. 육회를 다시 먹을 일은 없을 것이란 이유다. 너무 아쉽다. 진짜 대충 국끓이다가 끄트머리 주워 먹어도 맛있던 게 쇠고기였는데. 어쩔 수 없다. 시대가 그러하니.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가양조 중 원당으로 가당하기? 백설탕을 추천하는 이유! (0) | 2025.03.14 |
---|---|
전통소주에 대한 몇 가지 (0) | 2025.03.01 |
토탈워 시리즈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 (1) | 2024.11.30 |
몰트로 술을 만들다가, 누룩 만만세! (2) | 2024.11.23 |
와인이 팔리지 않는 이유? 스스로 쌓아올린 벽 (0) | 2024.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