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생산력이 높지 못했던 전근대사회에서 특히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던 곡식의 생산은 항상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였다. 더구나 토지를 기반으로 한 봉건적 질서에서는 모든 경제단위가 토지에서 생산된 곡식을 통해 이루어졌기에 더욱 그랬었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부자를 나누는 기준이던 천석꾼, 만석꾼하는 것도 결국 소유한 토지의 생산력을 기준으로 했던 것이었고, 전국시대 이후 일본에서 다이묘들의 실력과 급을 나누는 기준이었던 고쿠다카 역시 쌀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유럽도 다르지 않아서 기본적으로 영지의 모든 생산은 밀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생산수단인 토지를 소유한 지주나 영주들 입장에서도 가능한 더 많은 땅에서 주곡인 쌀과 밀을 생산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와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