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오빠밴드를 거의 보지 않았다. 워낙 그 전에 밴드에 관한 너무 인상깊었던 프로그램을 둘이나 봤던 터라. 하나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했던 라디오스타 특집 기러기밴드, 다른 하나는 올 6월엔가 방송했던 반갑습니다 선배님 김태원편.
전자는 유영석과 김태원 등 여전히 현역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밴드생활과는 오래전에 멀어진 홍서범과 김흥국 등을 엮어 하나의 팀을 만듦으로써 과거 그들이 명성을 날리던 때의 향수와 그러나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한 빛바랜 듯한 모습을 통해 마음껏 웃을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페이소스랄까? 그래도 홍서범은 스쿨밴드 출신이니 몰라도 김흥국은 연주자로서 그리 우습게 볼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무엇보다 한때 3대기타리스트로 꼽혔던 김태원의 어눌한 모습이라니. 그런데 그런 불협화음 가운데서도 음악은 흐르더라는 거다. 그 미묘한 조화? 아니면 부조화?
반갑습니다 선배님 김태원편에서는 졸업한 선배가 모교를 다시 찾아서 후배들을 모아 밴드를 만들고, 그들이 쓴 가사로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 함께 연주하고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가운데서도 레전드라 할만한 명장면이었는데, 자신의 아픔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쓴 시에 즉석에서 곡을 붙여 만든 아름다운 노래에 그것을 함께 연주하고 부르는 모습들에... 물론 한참 서툴고 어색했지만 그러나 그런 단점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오빠밴드로 돌아가 보자. 과연 오빠밴드에는 뭐가 있을까? 신동엽이 한때 밴드를 했었단다. 탁재훈도 학교 다닐 때 밴드를 했었단다. 그러나 탁재훈은 프로뮤지션이다. 일단 음악을 해서 앨범도 팔고 돈도 벌고 했던 사람들이다. 슈퍼주니어는? 그리고 걔... 누구더라? 김도균이 기타 던졌다고 울쌍짓던... 걔는 아예 밴드를 했었다. 유영석은 말할 것도 없고.
차라리 기러기밴드처럼 흘러간 옛스타들을 모아 추억을 자극해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때 유명했지만 지금은 퇴색한... 그래서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어색하기만 한 모습에서 향수와 아련함을 자극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올드팬은 모았겠지.
아니면 아예 아마추어들 모아놓고 실력을 키워가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오히려 신동엽이 좋았던 게, 신동엽은 개그맨이면서 과거 밴드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밴드 안에서 자신의 파트 연주에 전력을 기울인 멤버이기도 했었다. 그것 때문에 웃음을 잃었네 비난을 들었지만 사실 그게 정상이다. 신동엽이나 아마 밴드를 했었던 경험이 있는 비음악인 출신의 멤버들이 모여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오히려 그게 더 감동이었을 것이다. 전혀 연주라고는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만들어간다... 멋지지 않을까?
백두산의 유현상과 김도균에게서 무대매너에 대해 배우는 장면이 인상깊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모두가 아마추어다. 자기 분야에서는 모르지만 밴드로서 공연하는 데 있어서는 모두 아마추어다. 그렇다면 배워야겠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익혀야 한다. 그러자면?
아마 차라리 모두가 초보자였다면 그렇게 게스트 불러 배우면서 점차 실력을 키워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곡도 만들어가면서, 때로는 노가바로, 때로는 표절로, 나름대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멜로디를 땄다가 결국에 좌절하는 모습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무대에 서자... 처음에는 노천에서 공짜로, 점차는 돈을 받고서 큰 무대에서... 락페스티벌에도 나가고...
지금 천하무적야구단이 그러고 있다. 야구를 하는 동안에는 웃음? 그런 것 없다. 진지하게 야구만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간만에 찾아 보았을 때 그 서툴던 멤버들이 그리 실력이 늘어 있다. 공도 곧잘 보고 잡고, 또 치기도 하고, 지고 나면 억울해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울기도 하고. 웃음이야 없지만 그렇게 시청자와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 감동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찾아가 풍물도 보여주고, 다양한 사람들과 사연도 소개하고...
차라리 그랬다면 김구라의 역할이 빛을 발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지하게 음악을 하려 한다면 자칭 팝칼럼니스트인 김구라의 음악적 지식이 팀 안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주는 커녕 웃기려 호들갑떠는 내용이 전부이니 팝에 대한 지식이야 있으나 없으나...
내가 오빠밴드에서 가장 싫어한 것도 탁재훈이었다. 탁재훈은 오빠밴드에서 철저히 예능만 했다. 밴드를 한 게 아니었다. 예능을 했다. 웃기려 들었고 강 웃겼다. 오빠밴드를 완전 코미디로 만들어버린 주범이다. 어떻게 해도 그냥 우습기만 한... 그래도 프로뮤지션들이기에 더욱 웃기게 만든...
띄엄띄엄 찾아보기는 했는데 도저히 남자의 자격을 포기하면서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던 이유였다. 감동도 없고, 성장도 없고, 성취도 없고... 도대체 이런 걸 왜?
원래는 예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워낙 잘 보지 않는 프로그램이라... 보지도 않는 프로그램 욕하는 건 참 못 할 짓이다. 그러나 이제는 폐지된다고 하니. 누군가 이 아이템을 잘 살려보기를 바라며. 천하무적야구단이 왜 현재 잔잔하지만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것도 예능이라는 것을.
아무튼 웃기는 것만이 예능은 아니라는 거다. 웃자고만 예능을 찾아보는 것은 아니다. 웃길 것은 철저히 웃기되 굳이 웃음보다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것에서는 그 다른 것을 보여주고... 오빠밴드는 그것을 못해 망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나가 그 프로그램을 보다 만 이유였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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