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무협소설을 읽다가 식겁한 적이 있었다.
주인공이 열심히 달려간다. 그런데 웬 여자들이 막는다.
"비켜라!"
그러자,
"못 비킨다!"
결국 주인공에게 그 문파 500명이 몰살당한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리플,
"그러길래 누가 앞을 막으래?"
주인공의 아버지로 인해 그 집안의 가장과 장자와 핵심인사가 모두 죽었다. 그러자 여자가 몸을 팔아가며 주인공을 잡아죽이려고 한다. 주인공이 원한을 품는다.
"복수하겠어!"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저항도 못하는 어린 아들을 죽이는 복수를 보면서도 그리 환호하더란다.
"통쾌하다!"
요즘 내가 무협소설을 그래서 무서워서 잘 못 읽는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악플러에 대한 인터넷의 반응 때문이다.
분명 악플이다. 인신공격이며 사생활침해이며 당사자는 물론 주위에까지 고통을 주는 폭력이다. 그런데도 말한다.
"그럴만 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그러랬냐고."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악플러치고 악의를 가지고 악플을 다는 사람은 드물다. 아니 악인이라고 악한 생각을 가지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도 드물다. 전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정당하다 생각한다. 잘못이 없다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옆에서 부추긴다.
"그럴만 했네."
"그렇기도 했네."
마치 버스에서 여자친구가 성추행당했다고 아예 한 집안을 어린아이까지 몰살시킨 살인범더러,
"역시 남자라면 그래야지!"
역시 무협소설이 문제일까? 무협소설이 너무 많이 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같은 세태가 무협소설을 통해 드러나는가.
정히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신고하라. 고발하라. 어지간한 문제들은 사법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뭣하러 악플 달고 노력낭비하는가. 경찰에 신고해서 콩밥 먹이면 깔끔하다.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모두가 그렇게 나서서 비난할 것이 못 된다. 물론 도덕적인 비판이야 있겠지만 도덕적인 비판이 개인에 대한 매장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비판과 소외는 사회적인 제제로서 정당하지만 그것이 정도를 넘어선 비난이나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그 자체가 폭력으로써 문제가 된다. 집요하게 개인의 사생활까지 쫓으며 공격을 이어가는 것이 결코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터라. 죽지만 않으면 그에 대한 어떤 비난이나 공격도 허락된다. 단,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때.
"이걸 계기로 한 방에 훅 보낼 수 있겠다."
"이대로 이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게 만들어야겠다."
"다시는 얼굴 들고 활동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것이 정당한 비판인가. 아니면 증오인가.
분명한 건 있다. 증오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판단을 마비시킨다. 증오로 인한 판단이 제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증오로 인한 모든 판단과 결론을 불신하며 부정한다. 그건 가치가 없는 것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이것도 전통이기는 하다. 빨갱이 때려잡는다면서 갓난아이들에게까지 총알을 박아넣던 나라다. 열살 갓 넘긴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아예 한 마을을 씨몰살시켜버리고, 그러고도 빨갱이 때려잡기 위한 것이니 잘했다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달까? 그 후손인 거다.
아무튼 악플러에 그래도 관대한 인터넷 문화를 보면 - 이것도 역설이다. 그렇게 악플러 비난하면서 정작 악플러에 대해서는 당하는 사람이 잘못이란다. 당하는 사람이 잘못해서 악플을 당하는 것이란다. 아니 악플조차 아니란다. 그들이 말하는 악플이란 순전히 악의에 의해 가해지는 어떤 극단적인 폭력들. 그러나 최진실이 그렇게 달 때도 네티즌이란 그렇게 정의로웠었다.
불관용에 대한 관용은 없다. 악에 대한 정의란 악을 배제하는 것이다. 악플은 악이다. 인터넷상에서 개인에 상처를 주는 악의적인 모든 행동이란 악이다. 설사 그 의도가 선하다 하더라도.
왜 악플로 인한 문제가 끊이지 않는가. 인터넷이니까. 그들 자신이 악플러인 것이다. 단지 스스로 악플을 다는 사람과 악플을 방관하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 의도가 좋으면 수단은 상관없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확실히 요즘 무협소설들은 너무 무섭다. 너무 사람을 함부로 죽인다. 단지 원한이 있다는 이유로. 단지 악인이라는 이유로. 그 무리라는 이유로. 사람 죽이기 경쟁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그런 것들을 쓰는 사람은 누구이고 좋다고 읽는 것은 누구인가?
말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수단까지 정당화되지 않는다. 수단이 옳지 못하면 의도까지 옳지 못한 것이 된다.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사생활인가. 그에 대한 절제되지 못한 폭력인가.
생각없는 정의야 말로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이다. 악플을 다는 사람과 그것을 동조하는 사람과 용인하는 사람과... 차라리 악플이 나쁘다고 말이나 말던가. 같잖다.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드컵과 아이돌 팬덤 - 투사와 투쟁, 본능... (0) | 2010.06.23 |
---|---|
어느 추리물에서 - 정황과 증거... (0) | 2010.06.22 |
바보들의 답맞추기... (0) | 2010.06.21 |
나는 단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싫은 것 뿐이다. (0) | 2010.06.19 |
연예인은 공인...? (0) | 2010.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