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라는 게 있다. 개인의 욕망을 대상에 투영함으로써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자가 있다.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은 개인이 있다. 그러면 그 행동 하나하나가 그리 부럽고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부자의 일상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로부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때로 자신의 이익보다 부자의 이익을 위해 더 분노하고 더 열성적이고 더 헌신적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영웅이란 그러한 투사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영웅이란 곧 욕망의 결정이다. 누구나 바라는 어떤 대단함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그를 동경하여 그를 닮고자 한다. 그에 의지하고 그와 동일시한다. 카리스마란 것이다. 영웅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자신의 말처럼 행동처럼 느끼는 것. 그리고 때로 사람들은 그 영웅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
"당신이 살아 우리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면 족합니다."
진심인 것이다. 상대에 자신의 욕망마저 걸어버리는 것.
국가주의란 바로 그러한 영웅숭배 위에 존재한다. 정확히는 투사다. 국가에 자신을 동일시여기는 것. 국가주의와 개인을 연결하는 것도 그래서 영웅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나라를 영광스럽게 만든 누군가를 통해 사람들은 국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결정한다. 영광스럽고 위대한 국가의 이미지는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에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전쟁이란 바로 그를 위한 최고의 기회다. 일단 위대하다. 훌륭하다. 대단하다. 어떻게 입증하는가. 전쟁이다. 역사상 전쟁영웅들이 가장 널리 추앙받는 이유는 그것이다. 상대를 꺾은 것이다. 상대를 누른 것이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겼다. 그 위에 섰다.
그리고 스포츠란 전쟁이다. 원래 스포츠란 자체가 전쟁에서 나왔다. 서로 죽고죽이던 전쟁이 더 이상 피해를 줄이고자 놀이라는 형태를 띄게 되었고, 그것이 점차 어떤 체계를 갖추면서 스포츠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줄다리기니 차전놀이니 돌싸움이니 해서 인근 저수지의 물을 누가 우선해 쓸 것인가를 두고 명절이면 겨루기도 했었다. 승자가 모두 갖느낟. 전쟁이 아니면 무얼까.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그래서다. 굳이 국가주의가 아니더라도 내 팀이 이기는 것을 통해서 내가 이기는 것과 같은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다. 내 팀이 이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나 또한 이기는 성취감을 누리기 위해서다. 지면 또 그것대로 설욕을 다짐하며 서로에 대한 일체감을 다지고.
물론 스포츠 자체가 좋아서일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스포츠를 즐긴다는 것은 그같은 경쟁을 즐기는 것이다. 투쟁을 즐기는 것이다. 이기는 모습을 통해서, 이기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서, 마침내 지고 마는 애석함을 통해서, 다른 누구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본능을 충족시키고자. 그래서 전혀 모르는 종목이어도 단지 '우리'팀이 나간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게 열광적이 되는 것이다. 스포츠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그 경쟁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단지 스포츠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긴 굳이 사기업인 삼성에 국가주의적인 어떤 욕망을 투사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은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인데 삼성이 소니보다 낫네 하면서 괜한 일로 다투고 하는 게 그런 경우다.
그리고 바로 아이돌 팬덤. 도대체 누가 더 예쁘고 말고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게 상관이 되는가. 누가 더 매력적이고 누가 더 인기가 있고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하게 이유가 되는가.
워낙에 자기완결적이다. 누가 노래 못한다고 해도 내가 듣기에 좋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누가 춤 못 춘다고 해도 내가 좋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다른 아이돌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예쁘고 잘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자신의 일이니. 물론 그렇더라도 다른 아이돌보다 더 예쁘고 잘하면 기쁘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남보다 더 낫고 못하고에 일희일비라는 것이다. 남보다 더 인기 있고 남보다 인정받고, 그래서 그것을 위해 인터넷을 누비는 투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돌을 위해서. 정확히는 자신의 아이돌에 투사한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그 투쟁심을 위해서.
아이돌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리 친하다 않던가. 심지어 같은 팀이다. 언니동생 하고 친구하고 하는 사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팬들은 서로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위해 안달이다. 아이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투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투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뒤틀려 있다고 하기에는 이게 또 인간의 본능이라.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다른 것으로 아마 그들은 똑같이 경쟁할 것이다. 단지 자기가 모는 자동차의 제조사라는 이유로 현대와 대우의 대리전을 치르기도 할 것이고, 아, 컴퓨터에서도 AMD와 INTEL의 대리전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요즘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혹은 아이폰과 갤럭시스의 대리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같은 기제다.
결국에 타인을 통해서만 자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동물이라. 경쟁을 통해 우위에 섰을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그래서 그 욕망을 대상에 투영한다. 단지 그를 위해 자신의 영웅을, 아이돌을 선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기는 편 우리편이라고. 대세가 대세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다.
"지기 싫다!"
이기는 편에 서면 지지 않아도 될 테니까. 대개 그런 경우가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투쟁적이며 가장 열정적이다. 갓 팬이 되고서 더 골치가 아파지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 가장 처치곤란이다.
다만 나같은 경우는 월드컵 16강 갔다고 별다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월드컵 16강이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16강 간다고 돈이 더 벌리는 것도 아니고, 뭐라도 일이 더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자기완결이다. 굳이 국가대표의 승리가 나의 가치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불손한 것일 테지만.
문득 떠올라 끄적여본다. 쓸데없이 길어졌다. 원래는 이 정도는 아닌데. 별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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