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유현상이 음반회사 실장?

까칠부 2009. 10. 24. 20:33

아, 빼먹을 뻔 했다. 절친노트 보니까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 유현상이 원래 음반회사 실장으로 락커가 아니라...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유현상은 한국 락 1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데뷔가 70년대 초반으로 이미 17살 때 당대 최고의 밴드 라스트찬스의 기타를 치고 있었고, 이후 사계절을 거쳐 사랑과 평화와 다시 김태화가 보컬로 돌아온 라스트찬스의 기타로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죄다 한가락 하는 밴드들이다. 그만큼 기타실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주로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클럽밴드의 한계가 자작곡 없이 해외 커버곡들만으로 연주하고 하다 보니 수명이 그리 길지 못했다는 것이다. 라스트찬스도 아마 캐롤음반 하나 내고 말았을 것이다. 본토의 연주인보다 더 훌륭하게 연주한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자기 음악이 없다는 한계는 연주인들을 쉽게 조로하게 만들었고, 수명이 끝난 이후 철저히 잊혀지도록 만들었다. 당시 클럽무대에서 알아주던 연주인 가운데 지금 알아주는 이가 누가 있던가?

 

유현상은 그런 현실을 직접 보고 느껴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사계절의 리더가 곡쓰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해서 보다 오래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 - 그렇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곡쓰기를 배우고 음악을 전문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80년대 밴드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현철이나 다른 밴드출신의 가수들처럼 솔로로 데뷔하려 준비하는 과정에 아마 서라벌 레코드 사장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유현상의 재능을 알아본 서라벌 레코드의 사장은 그에게 전권을 맡겨주었었고.

 

그래서 80년대 메탈붐을 타고 백두산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창식과 한춘근은 원래 유현상과 친구이고 밴드시절 알게 된 사이로 유현상과 마찬가지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을 키워 온 베테랑들이었다. 여기에 이태원에서 한창 주가를 날리던 젊은 기타리스트 김도균을 영입하고, 유현상이 곡쓰기와 보컬로 참가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백두산. 원래 백두산에 보컬을 따로 구하다가 없어서 유현상이 하게 되었다는 말은 어제 절친노트에서 처음 들었다.

 

아무튼 말이 음반회사 실장이지 당시 유현상의 나이가 32인가 그랬다는 것이다. 30 넘어가면 슬슬 노후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음악이 좋아 그저 연주만 하는 것으로는 미래가 불안해지는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솔로를 준비했던 것이고, 그러다가 음반회사 사장과 뜻이 통해 음반제작의 전권을 부여받은 것이고...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라는 거다. 그동안 김태원이 나와서 유현상더러 락계의 직속선배라 한 게 몇 번인데. 자기가 가장 동경하던 선배라고도 몇 번이나 말했고.

 

그나저나 진짜 카리스마 시절 이야기까지 꺼냈을 줄은 몰랐다. 그거 유현상에게 꽤 큰 건데. 당대에 신대철과 비견되던 이근형까지 끌어들여서 카리스마를 만든 건 좋은데 이지연 백밴드. 그때 배신감이 상당했었다고 들었다. 다만 이 시기 김종서의 음악이 큰 줄기를 완성하고 있었으니 의미는 있었다. 유현상이 한 짓과는 별개로.

 

아무튼 어제 진짜 빵빵 터졌었다. 김흥국 밴드하던 이야기는 나도 알거든? 라디오 나와서 몇 번 이야기... 아니 호랑나비 뜨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진아라고 시한부 생명을 사는 여자아이를 두고 노래도 쓰고 했었는데, 백두산 무대에도 섰었구나?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