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김현식 - 비처럼 음악처럼...

까칠부 2010. 7. 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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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음악처럼 - 김현식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오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오 그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
오~ 오 오

가사 출처 : Daum뮤직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음악을 듣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다. 간절히 음악이 고플 때. 그렇게 간절히 음악이 들려올 때. 머리로 가슴으로 그 멜로디가 사운드가 가사가 병처럼 들려올 때.

 

비가 오면 문득 떠오른다. 오늘처럼 우울하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디선가 김현식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그 거친 미성이. 그 다정한 탁성이. 그 사나운 울림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던가? 예전 아가페이즈에서 게이인 주인공은 그리 말한다.

 

"후손은 남길 수 없지만 그래도 음악은 남아 나를 기억해 줄 것 아닌가."

 

생물이기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욕망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음악이라도 대신해 세상에 남기고 싶다. 그래서 게이인 예술인들이 그리 많을까.

 

동아시아의 전통에서도 영생이니 불멸이니 하는 것은 신비주의적고 초월적인 어떤 것이 아닌 역사와 기억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어떤 것이었다.

 

"청사에 깨끗한 이름을 남기고자 하느니!"

"어찌 뒷사람들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훗날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설사 9족이 멸하여 후손조차 남기지 못해도 그래도 그 이름만은 남기고자. 그 깨끗한 이름을 남겨 역사 속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을 누리고자. 두려운 것은 죽음이나 멸족이 아니라 과연 역사 속에 그 이름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역사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 많은 충신, 열사, 의사들은 기꺼이 의를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예술인들도 마찬가지다. 예술인이란 원래 천직이었다. 남사당은 광대로 조선시대 가장 대표적인 천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을 하고 싶어 집을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판소리를 하고 싶어 양반으로써 자리를 박차고 마침내 명창이 된 권정이라는 이도 있었다. 잘 나가던 증권사 직원에서 제대로 밥벌이도 못하는 탓에 가족화 헤어져 평생을 외롭게 지내야 했던 고갱도 있었다.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던 고호를 지탱해 준 것도 바로 예술이었다.

 

인정받으면 그 누구보다 부와 명성을 누리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단지 성공만을 쫓아 그들이 그 고난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습실 빌릴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적 공연연습도 제래도 못 하고, 방세 낼 돈도 없어서 빈 병을 주워 팔며 음악을 하는 가난한 인디밴드처럼. 자장면을 어느날 먹고 싶어서 젓가락을 들고 골목길을 헤맸더라는 이야기는 참으로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음악을 한다. 단순히 돈을 벌고자?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것을 견디지 못해 커트 코베인은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자기증명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마지막의 가장 고차원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다. 마치 동물이 자기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발정을 하고 교미를 하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의미를 찾고자 그들은 무대에 서고 자기를 깎아가며 작품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여 간에 무리가 가고서도, 결국 간암으로 배에 물이 차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에서도 김현식은 마지막 녹음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에 누워서도 여전히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직업으로서 이전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며 자기에 대한 증명이었다.

 

지금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전혀 알지 못하던 나조차 그를 떠올리며 그의 음악을 찾는 것처럼. 음악을 듣는 순간에 김현식은 다시 살아 그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음악을 통해 김현식은 죽음조차 잊고 사람들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 그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는.

 

어쩌면 가사는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김현식이 떠난 날 비가 내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나는 그를 떠올린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는 순간 다시 그를 떠올린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아니 무조건반사다. 비는 김현식과 함께 살아 있다.

 

많이들 떠나고, 많이들 등지고, 어떤 이들은 살아 있어도 잊혀 있다. 그래도 그들이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것. 음악이 있기 때문에. 예술이 있기 때문에.

 

생각한다. 과연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살았다는 흔적은. 그러나 또 불교는 아무것도 남기지 마라. 티끌 하나라도. 그래도 가끔 먼 세월이 지나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면.

 

모두가 갖는 꿈일 것이다. 과연 이루어질 수 없는. 어차피 죽고 나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그러나 아무도 남지 않은 그때조차 나를 기억해 이야기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서 그렇게 자식을 낳고자 대를 잇고자 안달들 하는 것이겠지. 음악을 하고, 예술을 하고, 글을 쓰고, 연기를 하고...

 

아무 말 없이 음악만 들으려 했는데 말이 많아졌다. 비가 내리면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말도 많아지고. 이만 줄이련다. 음악을 듣겠다. 그날처럼.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던 그 날처럼.

 

김현식이 그립다. 그의 숨결이.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뜻이리라. 그리워하는 동안에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음악이 흐른다. 그의 숨소리처럼. 두근. 두근. 심장박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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