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윤수일 - 숲바다섬마을...

까칠부 2010. 7. 1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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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바다 섬마을 - 윤수일

파도 소리 들려오네 아련하게 밀려오네
노래 소리 들려오네 철새들의 노래 소리
섬 너머 노을이 붉게 물들면
기러기떼 울며 가고
두 손에 닿을듯한 별들을 따서
그대에게 드릴꺼야
숲바다 섬마을 살고싶네
숲바다 섬마을 가고싶네

봄이 오면 꽃 피고 여름이면 초록 바다
가을이면 잎새 지고 겨울이면 하얀 나라
수정 같이 해맑은 바람 불어와 들꽃 향기 날리우고
정 들지 못하는 도시를 떠나 그대와 살고 싶어
숲바다 섬마을 살고싶네
숲바다 섬마을 가고싶네

숲바다 섬마을 에 밤이 깊으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 밤이 새도록 그대와 함게 사랑을 태울꺼야
숲바다 섬마을 살고싶네 숲바다 섬마을 가고싶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친네 여전히 짱짱하구만!"

 

아니 노친네도 아닌가? 55년생일 테니 당시도 아직 50대다. 한창 나이일 텐데.

 

그러나 나부터가 아직 어리다 보니 일단 50대면 늙었다는 이미지가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서 50대는 커녕 40대만 되어도 원로취급이다. 말이 원로지 한 마디로 퇴물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노친네가 참 여전히 쌩쌩하게 음악도 잘 만드는구나.

 

그런데 얼마전 김태원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음악을 26년 동안 하게 되면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는데.

 

그렇다. 하루에 한 번 씩만 기타줄을 튕겨도 윤수일이 데뷔한 것이 20살이었으니 30년 넘는 세월인 것이다. 회수만 1만 번이 넘는다. 과연 1만 번이나 기타줄을 퉁기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렇게까지 음악을 해 왔다면 나름 작은 성과가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윤수일이 누구인가. 80년대 가장 세련되고 가장 강렬한 음악을 들려주던 최고의 음악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국 뉴에이지는 윤수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기도 했다. 비록 그동안 소식이 뜸했다고 그의 음악까지 뜸해졌을까.

 

확실히 그리운 느낌이 드는 멜로디와 사운드다. 70년대, 80년대를 연상시키는, 그러나 전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연륜이 묻어나는 세련되면서도 정교한 마무리 때문이리라. 오래된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완성된 것은 지금이다. 지금의 윤수일이다. 오래되었어도 윤수일 또한 현재진행형인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음악인이다.

 

참으로 아련하기까지 한 그리움이란. 그러고 보면 그동안에도 윤수일의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던 것이 바로 그같은 이방인의 정서였다.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윤수일의 음악에서는 일상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방의 떠돌이를 연상케 한다. 어딘가를 끝없이 그리워하는.

 

80년대 그는 이제 갓 도시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이방인들을 노래하고 있었다. 어딘가 도회적이면서도 도시로부터 겉도는 어떤 쓸쓸함, 소외감. '제 2의 고향''유랑자''아파트'가 그런 노래였다. '아름다워'가 주는 몽환적인 정서도 바로 그런 정서에 기인한 것이었을 터다.

 

그리고 이제 '숲바다 섬마을'에서 그는 끝내 길들여지지 못한 도시를 떠나고자 한다.

 

정 들지 못하는 도시를 떠나 그대와 살고 싶어

숲바다 섬마을 살고싶네
숲바다 섬마을 가고싶네

 

하긴 이제 떠나고자 할 때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어느새 은퇴를 하고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떠나는 어떤 사람들처럼. 벌써 그의 나이도 50줄을 넘었다. 그의 음악은 그렇게 그가 겪어온 시간 만큼 그와 함께 지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과 함께 음악도 나이를 먹었달까?

 

"누구나 30년 넘게 음악을 하다 보면 이 만큼 할 수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서는 분명 그의 시간들이 느껴진다. 그의 삶이. 그의 경험이. 아, 그는 벌써 이렇게 살아왔구나. 그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앨범에 수록된 다른 음악들도 그랬다. 그는 자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굳이 자기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대중이 바라는 통속적인 성인가요와 그가 추구하던 락과, 그러나 어느 것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고집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마치 한 번 들어보라며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기타줄을 퉁기는 오랜 친구와도 같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그것은 마치 윤수일이 들려주는 자기 고백과도 같다.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털어놓는 정겨운 이야기와도 같다. 아마 그래서 성인음악일 테지.

 

어떤 특정한 장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들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음악들이 들려주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의 향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된이들만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가리키는 것이다. 아무리 세련되고 아무리 좋아도 다른 시간을 사는 이들은 결코 들려줄 수 없는 그들만의 음악인 것이다.

 

단지 시간에 갇혀 화석이 되었을 뿐인 옛음악이 아니다. 그건 그 시간의 음악이다. 지금을 사는 것은 지금의 자신이다. 지금이기에 들려줄 수 있는. 바로 지금의 윤수일이기에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다. 아마도 같은 시간을 살아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들려 줄 수 있는. 그러나 지금 그럴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왜 베테랑이 필요한가. 왜 그들은 지금도 현역이어야 하는가. 아무리 대중음악이 10대위주로 흘러가도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니.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살았고, 같은 시간을 살아온 이들이. 그들의 음악이. 이제는 단지 기억속에만 남아 있어도.

 

사실 2006년이면 그리 오래도 아니다. 오래된 음악이라 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하지만 음악이란 음악인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기에. 오래된 술통에서는 새 술을 넣어도 묵은 향기가 난다던가? 나온 지 몇 년 안 되었어도 오랜 향기가 나기에 그래서 오래된 음악이다.

 

확실히 나이를 먹었... 이라기에는 내가 워낙 오래된 음악들을 좋아했다. 80년대부터도 60년대, 70년대, 그 이전의 심지어 일제강점기에 불리던 가요들도 섭렵하곤 했었다. 참 노티나는 취향이었는데. 어쩌면 내가 '숲바다 섬마을'을 들으며 느끼는 그리움이란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떤 그리운 익숙함이 그의 음악에는 있다. 그러면서도 세월 속에 무르익은 연륜의 능란함이.

 

아직 자정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남자의 자격을 보지 못한 탓에. 자정도 넘기 전에 음악에 대해 올리려니 어색하다. 그러나 새벽은 남자의 자격을 봐야 한다. 따라서.

 

추천하고 싶은 앨범이다. 굳이 앨범을 사라고는 않겠다. 아마 구하기도 쉽지는 않지 않을까. 스트리밍으로라도 들어보기 바란다. 한적한 밤 하루의 피곤을 풀며 어딘가 기대어 눈감고 들어보기를.

 

파란 하늘과 파란 숲과 파란 파도와 부서지는 포말과 한적한 어느 정겨운 마을과...

 

바람이 불어온다. 어린 시절 뺨에 와 닿던 찬 바람이. 입가에 미소가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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