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사슴 - 부활
슬픈사슴
슬픈 사슴이 당신과 꼭 닮았어
웃는모습이 꼭 슬퍼 작은새를
당신은 좋아했지만 당신은 새가 될수없어
당신은 환히 웃어도 귀여운 새는 아니에요
그저 웃어버리는 슬픈사슴 사슴같아요
그저 웃어버리는 슬픈사슴 사슴같아요
깊은 꿈속에 당신을 난 만났지
우는 모습에 내가 슬퍼 무언가를
나에게 원하였지만 알아들을수가 없어
나를 원망하는 듯 가만히 보고있었거든
이제 나는 당신을 정말 도울수가 없어
이제 나는 당신을 정말 도울수가
이제 나는 당신을 정말 도울수가 없어
이제 나는 당신을 정말 도울수가 없어
가사 출처 : Daum뮤직
슬픈사슴에서 김태원은 두 가지 메타포를 사용한다. 하나는 사슴. 하나는 새.
김태원은 인터뷰에서 동물원에서 우리에 갇힌 사슴을 보고 이 노래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슴이 슬픈 이유는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 갇혀 구속되어 있기에 사슴은 웃어도 슬프다.
새는 자유롭다. 자유롭게 하늘을 난다. 그래서 새는 지저귀며 노래할 수 있다.
우리란 어쩌면 기억일 것이다. 기억의 저편, 기억 속에 화석이 되어 버린 모습일 것이다.
과연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기억 저편의 그녀에게. 아니 차라리 닿을 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기억 속의 그녀는 항상 그 모습이다.
그녀는 행복해지고 싶어했다. 그녀는 웃고 싶어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제 누가 있어 그녀를 웃을 수 있게 할까. 그녀를 행복해지게 할까.
그녀는 새가 될 수 없다. 새가 되고자 했지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새가 될 수 없다. 원망이 아니다. 저주가 아니다. 그녀는 더 이상 현실에 없으니까.
사슴이 동물의 우리에 갇혀 있듯 그녀는 내 기억의 우리 속에 갇혀 있다. 갇혀 화석이 되어 있다.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원망하는 듯 나를 바라보아도 더 이상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새가 될 수도, 내가 그녀를 새가 되도록 해 줄 수도 없다.
그녀의 웃음은 그래서 더 슬프기만 하다. 그녀의 웃는 모습이 더 애닲기만 하다. 사슴이 웃을까? 그녀의 웃음은 웃지 않는 사슴의 웃음과도 같다. 의미가 없고 형체도 없고 그래서 에인다.
원래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그리 꿈에 보인다. 무언가 말하는데 들을 수 없다. 무언가 간절히 말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애닲고 애닲아서. 과연 죽은 이가 돌아와 말을 거는 것일까. 아니면 산 사람의 미련이 죽은 이를 다시 꿈속에 부르는 것일까. 죽어서도 그렇게 떠나보내기가 힘들다.
일본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마츠모토 사쿠타로는 히로세 아키의 유골조각을 17년이나 품에 안고 살아간다. 이미 그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고 없다. 이미 오래전에 그녀는 한 줌 재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그녀가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차라리 오늘도 살고 있음을 원망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의 설렘과 그 시절의 두근거림과 그 시절의 간절함과...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하나하나가 애닲고 애처로운데 단지 그는 그것을 지켜 볼 뿐이다. 기억이라는 울타리 너머에 사슴과도 같이 웃는 히로세 아키 그녀를.
유골은 그런 사쿠타로의 미련이다.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그래서 끝내 구속되어 버리고 마는. 히로세 아키는 기억이라는 우리 저편에 갇혀 있고, 나는 기억이라는 우리 이편에 갇혀 있다.
히로세 아키의 유골을 버리는 의식은 그래서 사쿠타로 자신은 물론 히로세 아키 또한 그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이며 자유다. 히로세 아키는, 그리고 사쿠타로는 그로써 비로소 새가 되어 날아간다.
슬픈사슴에서도 단지 갇혀 있는 것은 사슴과도 같은 그녀만이 아니다. 그리움과 애닲음, 안타까움, 원망, 미안함, 고마움... 감정은 소용돌이치며 그 또한 그녀라고 하는 기억 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녀가 슬픈 것은 비단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슬퍼서가 아니다. 그녀를 보는 그의 모습이 거울처럼 그녀에게 비친 때문이다.
히로세 아키의 유골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던 마츠모토 사쿠타로와 문득 기억속에 떠오른 그녀의 우는 모습에 슬퍼 절규하는 김태원과,
헤어짐은 미련을 남기고 미련은 기억을 끌어안는다. 기억은 감정의 무게 속에 화석이 된다. 그 시절 그 시간으로. 그 시간 그 순간으로. 마지막 헤어지며 보았던 그 애처로움. 애닲음. 안타까움. 차라리 싫어서 헤어졌다면 그 시간은 아름답게 미화될 것이다. 다하지 못한 감정이 있기에 그 기억을 부여잡고 헤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여전히 울고 있고, 그녀는 여전히 웃어도 울고 있고, 울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 그 순간 그 무엇도 해 줄 수 없었던 미안함. 그저 이렇게 지켜만 보아야 하는 안타까움.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노래 자체는 김태원이 이별을 하고 5년인가 지나서 나온 노래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17년의 시간을 두고 있다. 역시 그만큼 시간이 흐른 것일까? 아마 내가 지금 20대였다면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겠지. 그러나 마음에 새겨진 상채기도 그만큼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만큼 무뎌지고 그래서 그만큼 바래졌다. 아련함은 그래서 안개처럼 엷게 넓게 퍼져간다.
누구나 꿈꾼다. 꿈 꿀 것이다. 사랑했던 시간 만큼이나 어디선가는 행복하기를. 좋아했던 순간들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는 항상 웃고 있기를. 그러나 그것이 나와 상관없다는 것이 또 다른 아픔이라. 기억이 퇴색하고 감정까지 마모되었어도 이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릿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아마 앨범을 들으며 귀신을 보았더라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미련이 있다. 미련이 만들어낸 망령이 있다. 여직 놓아버리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가 격렬하게 몰아친다. 아쉬움이. 안타까움이. 미처 함께 떠나 보내지 못한 그 마음들이. 감정들이.
아마 그녀는 나와 상관없이 살아가겠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잊혀질 것이고 사라질 것이다. 의미없이 되어 갈 것이다. 삶과 죽음을 나누듯. 삶의 이 편과 저 편에서.
어쩌면 김태원이 쓴 가운데 가장 처절한 노래가 아닐까. 이별의 감정을 다룬 노래 가운데 가장 처절하며 비극적인 노래가 아닐까. 마치 귀신의 호곡성처럼. 생령이 되어 김태원은 노래 가운데 흐느낀다.
전혀 한국적인 가락이나 멜로디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어쩐지 어느 지방 민요를 듣는 듯한 무척이나 익은 느낌은 바로 우리 일상인 때문이리라. 우리의 일상의 감정인 때문일 것이다. 한국적인 Rock일까?
김태원의 거친 목소리가 있어 더 맛이 살아난, 그래서 김태원의 거친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면 맛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노래다. 멜로디 자체도 아름답다. 리메이크하며서 사운드도 훨씬 세련되어졌다. 그러나 그 시절에만 가능한 거친 맛이 그 감정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12집 pt1에서의 리메이크도 좋고, 7집 2CD에서의 이성욱의 버전도 괜찮고, 이승철의 솔로버전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2집인 이유. 2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지만 그러나 항상 떠오르는 이유다.
아픔이 있어 더욱 간절한. 아픔을 몰라서 또 애절한. 슬픔 그 자체를 형상화한 노래다. 아직 격정이 더 익숙하던 시절, 그에 어울리는. 시간이 흘러 곱씹으니 그 묵은 향기가 진하다.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남은 자들만의 특권이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원망도 아픔도. 절망마저도. 언제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날이...
시간이 아직은 더 필요할 것이다. 사랑할수록이 안녕이 되고 사랑이 되기까지. 먼 옛날 이야기다. 아주 먼...
덧, 1집을 끝으로 The End시절부터 함께 해 온 이지웅, 황태순, 김병찬 등과 김태원은 결별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 영입한 멤버가 정준교, 김성태, 서영진. 이 가운데 정준교는 6집까지 무려 10년 넘께 함께 하고 있었고, 서영진은 89년 부활이 해체된 뒤 작곡가로 활동하다 저 유명한 김민종의 "귀천도애"사건의 당사자가 된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정준교는 얼마전 다시 결성된 송골매에 합류하기로 했다 들었는데.
1집의 성공에 힘입어 자신감을 얻은 김태원이 전권을 쥐고 독재자가 되어 작사작곡과 프로듀스까지 모두 도맡아 작업한 김태원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드러난 앨범이다. 김태원이 만일 그때 대마초로 걸려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쉬운 한국 대중음악사상 명반 가운데 하나다. 가끔은 음악을 제대로 하려면 그런 것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도 많드는. 벌써 1987년이다.
지금도 전곡을 들어보면 전혀 촌스럽지 않은 멜로디와 연주, 편곡이 귀를 즐겁게 한다. 앨범도 아마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이승철과 재결합하면서 재발매한 게 있어서.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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